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산촌의 한국학

bindol 2022. 10. 27. 16:12

[이규태코너] 산촌의 한국학

조선일보
입력 2003.12.14 15:54
 
 
 
 

산촌의 외딴집들은 소나무 판자를 겹겹이 놓아 인 너와지붕이다. 이 너와는 도끼로 소나무의 동맥인 결을 찾아 자른다. 이렇게 자른 너와는 수십 년 가는데 기계톱으로 네모 반듯하게 제재한 너와는 2년도 못 가서 물이 샌다.

결을 살려두면 빗물이 결을 타고 흐르지만 제재한 너와는 결을 묵살했기에 물이 스며 썩기 때문이다. 나무 한쪽 이용하는 데도 생명을 아끼는 슬기를 산촌의 너와 쪽 하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물며 생명이 있는 금수나 벌레임에랴.

산촌에 집을 지을 때 터를 잡으면 맨 먼저 쌓아야 하는 것이 고수레 단(壇)이다. 모든 음식을 먹기 이전에 조금씩 떼어 이 고수레 단에 바치는 것이 산촌살이의 관습인데 신명과 공식(共食)하는 것으로 구전돼 내렸지만, 주변의 짐승이나 새·벌레들과 공식 공존하는 것 역시 자연친화 철학의 구현이다.

산촌의 장독대에는 곰독이라는, 나무로 파거나 싸리나무를 얽은 독이 놓여있게 마련인데, 감 딸 때 까치밥 남겨두듯이 된장 찾아 내려오는 곰을 위해 된장을 퍼서 넣어두는 곰 밥그릇이다. 산촌사람들은 짚신도 오합혜(五合鞋)라 하여 산길에서 벌레가 밟혀도 죽지 않게끔 느슨하게 삼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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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살이에서 꿀벌통은 불가결의 생계 수단인데, 애경사가 있으면 맨 먼저 벌통 앞에 가 고하여 더불어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돼 있다. 만약 이를 게을리하면 그 해 꿀이 시다든가 반감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초상이 나면 맨 먼저 벌통 앞에 가 통을 세 번 치고 검은 보자기로 씌워놓아야 하고, 딸을 시집보낼 때는 시댁의 집과 성명을 고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벌통을 나누는 봉분을 할 때 금전이 오가면 나누어 가진 두 집 모두 꿀농사는 망치는 것으로 알았다. 산촌에는 속칭 벌사돈이 많은데 사돈을 맺거나 품으로 갚는 비타산적 거래를 하는 것이 관례가 돼 있는 것도 벌이 같은 도덕체계 속에서 공동운명체로 더불어 살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보도된 바로 민속박물관에서 산촌의 살림살이 도구들을 비롯, 산촌의 생업 유물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산촌 기획전을 열고 있다 하여 산촌살이의 자연친화문화를 되뇌어 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