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장관 성적표

bindol 2022. 10. 27. 16:16

[이규태코너] 장관 성적표

조선일보
입력 2003.12.11 16:35
 
 
 
 

선조 때 정승 이준경(李浚慶)은 재상으로서의 자질을 따져보고자 두 판서와 더불어 기방(妓房)에 갔다. 거나하게 취하자 이준경은 수청 든 기생의 손을 잡고 “오늘 밤 나와 동침하지 않으려나”라고 물었다. 이에 “천첩이 대감을 잠자리에 모신다면 자식을 낳게 될 것이요, 자식을 낳으면 앞에 앉아계시는 두 대감들과 같은 지체가 될 것이온데 어찌 영광이 아니오리까” 했다.

실은 이 두 판서가 첩 소생들인 것을 알고 기생과 미리 짜고 연극을 꾸민 것이다. 이 모욕적인 기생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두 판서의 사람됨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한 판서는 안색이 태연하고 못 들은 척하는데 다른 판서는 발끈하여 안절부절못했다. 이로써 두 판서의 국량의 크고 작은 것을 알아보고 평점을 매겼던 것이다.

황희 정승이 영의정이었을 때 어린 나이에 등과한 김종서(金宗瑞)가 형조판서로 있었는데, 재기가 넘치고 기개가 높은 것을 과신하는 듯했다. 이에 작은 착오나 실수가 드러나면 관용하기로 소문난 황 정승인데도 불러 세워 호되게 꾸짖고 혹은 그의 종을 불러 대신 매를 치기도 했다.

같은 정승이던 맹사성(孟思誠)이 당대의 명재상인데 그리 심하게 허물을 잡으시오 하고 따지기까지 했다. 이에 큰 그릇이 되기 위해 날랜 기를 꺾고 깨쳐야 큰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며 평점을 높이 주기 위한 방편이오 했다. 황 정승이 물러갈 때 김종서를 정승으로 천거한 것은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삼품(正三品)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정기적으로 삼정승(三政丞)의 평가를 받았고 평점을 높이기 위해 가르치며 채찍질하여 이끌었다. 한데 그 평가 기준은 일처리를 잘하고 못하고보다 그 처리에 있어 발휘된 인간적 질이었다.

조선조 후기에는 최한기(崔漢綺)의 ‘인정(人政)’에 나오는 평가기준을 많이 활용했다던데 소장분수(消長分數)라 하여 일 처리에 있어 맺고 끊는 기품의 강약, 법리보다 심덕이나 어짊(仁)이 얼마나 작용했는가 여부, 문견(聞見) 곧 지식이나 체험의 길고 짧음 등을 수치로 따지는 평가기준표가 돼 있었다.

지금 개각 승진을 앞두고 장관 성적표가 나와 뒤숭숭하다 한다. 국무 수행에 있어 실수나 책임이 평가기준이 된 것 같은데, 성패보다 국사를 다루는 기틀을 보고 평가하는 고차원적인 옛 평가를 참고했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