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자선냄비속의 거금

bindol 2022. 10. 27. 16:13

 

[이규태코너] 자선냄비속의 거금

조선일보
입력 2003.12.12 17:22
 
 
 
 

부처님에게 아나율(阿那律)이라는 앞 못보는 제자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아니라 출가 후 설법을 들으면서 졸았기로 부처님 앞에 졸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느라 눈이 짓물러 못 보게 된 것이다.

수도하면서 옷은 제 손으로 짓고 기워 입게 돼 있었기에 아나율도 그에 따랐지만 오로지 바늘귀 꿰는 일만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바늘귀를 꿸 때마다 “누군가 공덕을 쌓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했다. “실 좀 꿰주십시오. 부탁합니다” 하면 될 것을, 실 꿰는 공덕을 쌓는 기회를 베풀고 있는 것이 된다.

인도여행에서 호주머니에 볼펜 두 개 꽂고 있으니 그 하나는 자기가 써주겠다며 손벌리는 꼴을 당한 적도 있다. 콜카타에서 손 벌리는 그 많은 거지들에게 베풀고서 고맙다는 말 한번 들어본 사람이 없는 것도 베푸는 사람을 위해 자기네가 희생하고 있다는 베풂의 사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월남 패전 후 보트피플로 이루어진 미국의 한 난민촌에서 이색적인 농성 데모가 있었다. 난민촌의 정신적 지주인 베트남 스님들에 대한 식량배급을 중단해 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다.

 

스님에 대한 식량이 공급되기에, 보시(布施)할 것이라고는 배급 식량밖에 없는 그들로서 보시할 명분이 없어지고 보시 못하는 정신적 고통을 덜어 달라는 것이 데모의 명분이었다. 곧 베푸는 것은 베풂을 받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베풂으로써 자신의 정신적·종교적 안정을 얻는 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불경에 삼륜청정(三輪淸淨)의 보시라는 가르침이 있다. 곧 베풂의 3요소를 말하는 것으로, 먼저 베푸는 사람이 ‘내가 너에게 베푸니 감사해야 한다’는 맑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해서는 안 되고, 보시를 주고받는 자 사이에 무슨 사연이 개재해서는 안 되며, 나에게 필요없는 금품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연말 자선냄비에 허술한 옷차림의 50대 사나이가 자신을 숨기고 자선냄비 사상 최고액인 3900만원을 냄비속에 넣고 사라졌다. 아마도 그 분은 지금쯤 심오한 종교적 경지나 꾸밈없는 순수한 인간적 본질에 자신을 동일화하고 있을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