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오타니 컬렉션
1900년에 들면서 중앙아시아를 탐험하던 헤딩과 스타인이 불교 경전과 미술의 보고인 둔황(敦煌)을 발견하고 방대한 문화재를 자기들 나라에 경쟁적으로 실어날랐다. 이 소식이 인도의 불적(佛蹟)순례를 하고 런던에 유학하고 있던 한 일본의 모험심 강한 젊은 스님을 자극했다.
그 스님은 일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주지인 오타니(大谷光瑞)로, 귀국하면서 젊은 네 사람을 대동하고 둔황에 들른 것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불교벽화를 비롯해 다량의 유물들을 낙타등에 싣고 자기네 나라에 옮겨놓았다.
유럽의 탐험대들이 국가나 박물관의 후원으로 학문적인 뒷받침 아래 체계적인 약취를 한 데 비해 오타니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렇다 할 학문적인 뒷받침이나 후원자 없이 불교에 대한 열정만으로 약취한 것이기에 그의 컬렉션은 거칠 수밖에 없었다.
크고 작은 벽화들은 어디서 어떤 부위를 잘라낸 것인지 기록이 없을 뿐더러 황급히 많은 약취를 하려 했기에 졸속이 유물을 망가뜨렸고 운반 수단이 낙타등이었기에 그 하중에 맞게끔 자르다보니 훼손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 유물들을 일본 고베에 있는 자기 별장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자기 절에 재정적인 파탄이 생겨 오타니는 주지 직을 물러나고 중국 뤼순(旅順)에 있는 별장에 가 살았다. 이때 그 유물의 일부를 중국에 갖고 가는 바람에 컬렉션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 컬렉션의 반이 넘는 1700여점이 일제 때 조선총독부 지하창고에 쌓여 있었는데 한국에 건너오게 된 동기는 이렇다. 1차대전 후 재벌로서 우익정당의 간사장을 역임한 정상(政商) 구하라(久原房之助)에게 이 컬렉션이 넘어갔고, 이 구하라가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16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하여 한국땅에 오게 된 것이다.
2차대전 중 베를린에 소장된 서역벽화는 폭격으로 많이 소실되었지만 2차대전과 한국전쟁까지 겪은 우리나라의 서역벽화는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으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희귀한 서역 불교벽화로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첨단 보존처리를 해온 이 서역벽화 가운데 「천불도(千佛圖)」 등 6점이 오는 16일부터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약탈만 당했을 뿐 약탈해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 이 굴러든 약탈문화재를 접하는 심정, 야릇하기만 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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