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감성 경영
지금은 빌딩과 매연으로 시야가 막혀 있지만 옛날에는 경복궁에서 남산 자락이 훤하게 내다보였다.
저녁 무렵 성종(成宗)이 경회루 다락을 거닐고 있는데 남산 기슭에서 멍석 깔아놓고 술잔 주고받는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재상 손순효(孫舜孝) 집이 그 어름이란 것을 알고 있는 성종은 내시를 시켜 확인케 하였다.
돌아와서 손 대감이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 수작하는데 안주라고는 오이 조각 한 가지라고 아뢰자 술 한상 차려 내리라 분부하고 그 하사 때문에 내일 감사 입궐하지 말라고까지 분부했다. 군신 간의 정이 배어나오는 한폭 수채화 같은 장면이다. 세조 쿠데타 때 집현전 학사들이 목숨과 바꾸며 완강히 저항했던 데는 불의에 대한 선비정신과 어린 임금을 지키라는 선왕의 고명(顧命) 말고도 문종(文宗)의 인간적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임금은 젊은 학사들의 침실을 야반에 들러 발로 차낸 이불을 덮어주고 술에 취해 청마루에 자고 있으면 어의를 벗어 덮어주었다. 귀물인 감귤을 한쟁반 내리는데 쟁반 바닥에 어시가 씌어 있어 신하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는 감성 경영의 제왕들이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마지막 강적 장사성(張士誠)과 대진하고 있을 때 일이다. 적의 후방을 포위하고자 좁은 협곡길에 숨어들고 있는데 알을 품고 있는 오리 한 마리가 길을 막았다.
주원장은 진군을 포기하고 오리가 새끼를 낳을 때까지 10여일을 기다렸다. 업보(業報)를 믿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 사이에 적의 부장(部將)들이 대거 투항해왔다. 그 큰 전쟁을 한낱 오리새끼의 생명 때문에 미루는 인정 많은 장수라면 그 휘하에 들어가는 편이 옳다고들 판단한 때문이었다.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명나라를 얻은 감성(感性) 리더십이다.
21세기 들어 미국의 경영 마인드가 계약적 이성(理性) 경영에서 인간적 감성(感性) 경영으로 달라지는 추세라 한다. 우리나라도 MBA마인드에 투철했던 CEO들이 이메일로 직원개개인과 마음을 트고 친필 편지를 띄우는가 하면 감명받은 책에 밑줄을 쳐 선물하고 1주일에 하루 출근시간을 스스로 정하게 하기도 한다.
오후 시간에 예술 관람을 하고 도시락 미팅으로 격의를 좁히는 등 감성 경영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양적 이성 경영에 한국적 감성 경영의 절충현상으로 주의를 끄는 새바람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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