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기생 파티

bindol 2022. 10. 30. 16:20

[이규태코너] 기생 파티

조선일보
입력 2003.10.01 16:36
 
 
 
 

한말까지도 서울에 내외술집이라는 이색 술집들이 있었다. 손님이 들면서 “이리오너라” 하면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방 안에서 “뒤주 위에 놓인 방석 깔고 앉으시오” 하고 소리한다.

앉아서 “술상 내보내라 여쭈어라” 외치면 문을 반만 열고 술상을 내민다. 이렇게 마시고서 “몇 주전자 나왔으며 값이 얼마냐고 여쭈어라” 하고 돈을 놓고 “잘 먹고 간다고 여쭈어라” 하고 나간다. 이처럼 주객과 주모가 내외하여 단 한 번 얼굴을 맞대지 않고 술을 팔고 마신다 하여 내외술집이다.

이 내외술집은 늙어 물러난 퇴기(退妓)가 영위하는 술집으로 비록 물러났지만 기생의 법도를 지켜 내외법을 엄수했기로 생겨난 술집이다. 이처럼 술을 팔면서도 내외법을 엄수했을 만큼 기생은 위신과 품위를 생명으로 한 직업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자주해온 매춘 관광을 기생파티로 통칭해왔고, 일전 중국에서 수사에 나섰다는 일본인의 매춘관광을 기생 파티로 표현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기생이란 말을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이는 기생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한국문화를 비하시키는 행위로 지양돼야 한다.

뜻글인 기(妓)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기능을 가진 여인이다. 궁중에서 기초의학과 약학을 이수한 의녀(醫女)를 약방기생이라 하고 역시 궁중에서 재봉기능을 익혀 옷을 짓는 침녀(針女)를 상방기생이라 했음에서 알 수 있다. 손님을 응대하는 기능인 가무(歌舞)를 익힌 것이 기생일 따름이지 퇴폐와 매춘과는 거리가 있는 호칭이다. 평양기생학교의 3년간 교육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무 외에 시서화(詩書 )를 익히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여사서(女四書)」 「계녀서(戒女書)」 「의기열전(義妓列傳)」까지 습득시켜 기도(妓道)를 익히게 했던 것만 미루어보아도 그 격조를 알 수 있다. 유학자 주세붕(周世鵬)은 「대학」을 줄줄 외우는 탁문아라는 기생과 안동 청량산에서 학문토론으로 세월을 보냈다지 않던가.

다만 타락한 소수의 기생과 갈보 등 몸파는 유녀(遊女)들이 기생을 참칭하여 기생 이미지를 타락시켰고 뭇사람들도 기생 파티란 말에 별반 두드러기를 일으키지 않고 지내왔지만, 본질 면에서나 역사적 시각에서 기생의 이미지는 보존돼야 하며 이를 지켜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말을 상용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기생의 본질을 일깨워주었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