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헐릴 뻔한 동·남대문

bindol 2022. 10. 31. 08:24

[이규태코너] 헐릴 뻔한 동·남대문

조선일보
입력 2003.09.07 15:55 | 수정 2003.09.07 23:22
 
 
 
 

임진왜란 때 한반도를 침공한 제1군인 고니시(小西行長)와 제2군인 가토오(加 正)는 전자가 천주교도요 후자가 불교도로 종교가 다른 데다 무공을 겨뤄온 앙숙으로 도요토미(豊臣秀吉)에게 조선침략의 무공을 앞다투어 과시하느라 초전부터 암투가 대단했다. 누가 먼저 수도 한양에 입성하느냐는 그 무공평가의 기준이 되기에 보다 빨리 입성하려는 암투는 가관이었다. 탄금대 전투 후 충주를 출발한 고니시군은 여주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직행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큰비가 내려 물이 불고 배가 없어 집을 뜯어 뗏목을 급조, 도강을 했는데 도중에 엎어져 적지 않은 병력의 손실을 보았다. 고니시는 도강한 선발대로 하여금 양평을 거쳐 한양으로 달려가게 하여 동대문을 통해 입성케 했다. 5월 2일 오후 8시 이전이었다.

한편 가또오군은 용인을 거쳐 한강에 이르렀는데 헤엄 잘치는 병졸로 하여금 강 이편 저편에 밧줄을 매게 하여, 이를 붙들고 도강, 남대문을 통해 입성했다. 5월 2일 오후 8시였다. 이미 고니시군 일부가 입성한 것을 알고 있었으나 ‘한양 입성 1번은 가토’라는 서장(書狀)을 들려 발 빠른 전령으로 하여금 일본 규슈에 와 있는 도요토미에게 급송시켰다. 그래서 가토오가 점수를 땄으나 실은 고니시군의 입성이 몇 시간 빠른 것으로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보도된 바로 조선침략의 전초작업이던 을사조약 전후에 당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는 작전상 포차(砲車)이동에 지장을 준다고 하여, 국보1호인 남대문과 보물1호인 동대문을 헐어버리려 했는데, 당시 일본계신문인 한성신보사장 나카이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이 두 성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오와 고니시가 입성한 문이기에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한반도 점거를 상징하는 개선문이라 해서 철거로부터 명맥을 이은 것이 된다.

뒤집어 생각해보거나 극단적인 흑백논리로 따지면, 남대문과 동대문은 친일파요 친일 건조물로 오히려 광복조국에서 철거했어야 했다는 것이 된다. 어찌할 수 없이 기우는 국운에서 당하는 수모일 뿐이지 국보제1호, 보물 제1호로서 한국의 상징으로 국내외에서 행세하고 있다. 역사 판단의 한 시각을 예시해준 동·남대문의 곡절이 아닐 수 없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