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추석 아웃소싱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다락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 만드는 노장인(老匠人)이 지나가다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성현의 글이라고 하자 “그러하시다면 성현의 껍데기만 얻고 계시는구먼요” 했다. “신이 수레를 깎을 때 느리게 깎으면 곧질 못하고 급히 깎으면 맞질 않으니 알맞게 깎기란 70여년 해야 감(勘)이 잡히고 감이 잡혀야 손끝에 얻음(得)이 생기는 것이지, 말이나 글로써 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도 자식에게마저 전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성인이 터득한 오묘한 경지를 어찌 글로 얻을 수 있겠나이까” 했다. 정치도 정치학에서 얻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 경륜을 쌓아야 하고 공경이나 정성이 빠진 제사도 아무리 격식이 바르고 제수가 융숭해도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비 내리는 일요일 서울 북한산에는 추석 명절을 앞둬서인지 등산객이 거의 없었다. 한데 산 중턱에서 비닐 우의 둘러쓰고 솔잎 따고 있는 중년 부인이 있었다. 송편 빚기 위해 솔잎을 따고 있다 했다. “시장에 가면 솔잎을 판다던데 비오는 날 굳이…” 했더니 돌아가신 시부모는 다른 건 모두 사도 되지만 무덤 벌초와 송편은 자손들이 손수 하고 빚어야 한다는 것을 임종에서까지 말씀하셨다 했다. 솔잎도 개량 소나무는 안되고 전통 소나무여야 기운이 상통한다 하여 멸종해가는 조선 소나무 찾아 높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빈사(瀕死)하는 전통정신 지킴이의 아름다운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무덤에 나는 풀은 망인의 유체에서 나는 발부(髮膚)인데 생판 모르는 남에게 돈 주고 쥐어뜯게끔 맡기는 것은 망인에 대한 가해(加害)행위다. 무덤에 떼가 잘 자라는지 못 자라는지, 또 나는 풀과 피는 풀꽃의 종류와 그 위치로 망인의 의사를 가늠하는―벌초는 저승과 이승 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것을 생각하면 성행하는 벌초 아웃소싱은 통화거부 행위다. 송편도 아기 손이 빚었는지 할매 손이 빚었는지, 그 손가락 자국의 굵기와 힘으로 판단하며 골라 드셨던 옛 어른들이다. 그래서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떡집에서 기계로 곱게 빚은 송편을 제사상에 놓지 못하게 했다. 남녀노소 없이 송편 빚는 관행은 후손들의 체온이 스밈으로써 교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추석의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두꺼워가는―그래서 추석 보름달도 나타나기를 거부한 것일게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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