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대통령과 '하이 눈'

bindol 2022. 11. 1. 15:50

[이규태코너] 대통령과 '하이 눈'

조선일보
입력 2003.08.13 16:34
 
 
 
 

지난 50년간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즐겨 보았던 영화가 서부극 '하이 눈' 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번이나 이 영화를 즐겨 보았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들이 갖는 절실한 공감대가 이 영화에 표출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하이 눈'의 어떤, 무엇이 미국 대통령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 무엇보다 주인공인 보안관 게리 쿠퍼의 고독한 결정과 대결이 중대사를 둔 대통령의 경우와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5년 전에 잡아넣었던 흉악범 일당이 복역을 마치고 복수전을 위해 돌아온다. 보안관 임무를 마치고 신부와 마차를 타고 떠나가던 쿠퍼는 그 소식을 듣고 마을로 돌아온다.

이 흉악범들과 대결코자 우군을 위해 보안관보(補)를 찾아갔으나 후임에 자기를 추천하지 않았다 하여 거절했고, 판사와 촌장(村長)은 승산이 없으니 떠나가 달라고 간청했다. 술집을 하던 헬렌도 소란을 핑계대고 떠나갔다. 이 우군 없는 결전에 임박하는 고독한 긴장이 대통령의 최후 결단과 너무 흡사하다 할 것이다.

둘째로 줄거리도 단순하여 복잡한 것은 모조리 쳐냈고, 무대도 서부극에 꼭 있어야만 하는 보안관 사무소와 술집, 그리고 교회가 전부다. 진행도 마치 바이올린의 한 줄 위에서 나는 소리처럼 단순하고 영화 속의 경과 시간도 현실의 시간 길이와 똑같아 각각이 닥치는 위기가 현실감으로 와 닿는다.

 

대통령이 감당하는 국사는 복잡다단하고 반대안이며 절충안이며 3안 4안 9안까지 가지쳐 결정에 혼선과 고통을 준다. 그래선지 미국 대통령들이 참모들에게 공통으로 원하는 것이 보고사항의 단순화다. '아이크 리포트'며 '클린턴 폼'이라 하여 보고 양식이 간단명료하게 정해져 있었던 것도 그것이다. '하이눈'의 단순화가 이 대통령들의 요구에 신선하게 코드가 맞아들었음직하다.

셋째로 굳이 궂은 일에 개입하지 않고 귀여운 신부 끌어안고 떠나갔어도 될 일인 것을 유서까지 써놓고 백주에 대결하는 이 의로운 일에의 개입이, 미국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의 조건이요 자질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이 영화를 보고 또 보았을것이다. 대결에 승리한 쿠퍼는 보안관 기장(記章)을 지상에 떼어 던져버리고 떠나간다. 대통령들은 이처럼 고독한 싸움을 하고 떠받쳐도 떠나가는 교훈에도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