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비단벌레 치마

bindol 2022. 10. 31. 08:44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비단벌레 치마
입력 2003.08.14 16:46:18 | 수정 2003.08.14 16:46:18

어제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우리옷 발자취」전에 별나게 눈길을 잡아두는 삼국시대의 치마가 있다. 영롱한 금녹색을 띠는 비단벌레(玉蟲)의 날개 두 쌍씩을 십(十)자형으로 엮어 옷감에 무늬를 놓아 지은 치마로,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진다. 경주 금관총(金冠塚) 발굴 때 옷무늬로 수식했을 비단벌레 날개들이 나왔으며 그 날개 크기로 미루어 저고리 하나를 비단벌레로 장식하는 데 140마리는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염색 이전에 자연 그대로의 색깔로 미를 추구했던 조상들의 미의식에 숙연케 하는 비단벌레 치마다. 익선관(翼蟬冠)이라 하여 매미 날개로 관모를 장식하여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의 결백을 본뜨게 했듯이 자연미를 정신문화로까지 승화시켰던 조상들이었다. 비단 옷뿐 아니라 도검(刀劒)의 손잡이나, 승마 때 발을 괴는 등자( 子)나 안장의 장식에도 쓰였고, 고구려 고분에서도 금동판 장식으로 출토되었다. 일본 호류사(法隆寺)의 국보로 아미타불을 모신 미니 불당(佛堂)인 옥충주자(玉蟲 子)는 세계문화사에서 평가받고 있는데 4542마리의 날개로 꾸며진 이 미니법당도 신라에서 전래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녹색 꽃빛이 난다 하여 녹금선(綠金蟬), 금화충(金花蟲)으로도 불리는 이 벌레를 한적에서는 길정충(吉丁蟲)이라 했는데, 이를 비녀에 장식하거나 암수놈 한 쌍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마음먹은 사람이 끌려드는 사랑의 묘약이라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한다. 특히 이 벌레는 붉은 무궁화꽃의 화심에서 교미를 하게 마련인데, 그 사랑 중인 놈을 잡으면 미약(媚藥) 효과가 커지는 것으로 알았다. 호사다마라, 이 비단벌레에는 독이 있어 피부에 닿으면 물집이 생기고 소가 목초와 더불어 먹게 되면 복부가 부풀어 오른다 한다. 라틴어 학명인 뷰프레스트는 바로 소가 부풀어 오른다는 뜻이다. 이 비단벌레에서 칸타리진이라는 독성분이 추출되었는데 30㎎이면 치사량이지만 미량은 사랑의 미약이 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우리 조상들 비단벌레를 옷장에 넣어두면 옷이 불어나고 몸에 지니면 옷 걱정이 없어진다는 속신이 있는데, 사랑받고 싶은 은밀한 본능과 여차하면 마시고 죽으려는 미약·독약 양용을 합리화시킨 슬픈 명분일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