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병역기피 문신

bindol 2022. 11. 2. 07:45

[이규태 코너] 병역기피 문신

조선일보
입력 2003.06.02 19:45
 
 
 
 

몸을 쪼아 그림을 그려넣고 글을 새기는 문신의 목적은 다양하다. 우리
욕말에 경칠놈이라는 것이 있는데 경( )이 바로 문신(文身)으로 조선조
초만 해도 죄인에게 가하는 형벌 가운데 하나였던 데서 비롯됐다.
이를테면 절도에는 훔칠 도(盜)자를 팔뚝에 문신하고 공공재산을 빼내면
도관전(盜官錢), 마소의 도살을 범하면 재우마(宰牛馬)라 문신하므로써
전과를 평생 나타내며 살게 했다. 고려 예종(睿宗) 때처럼 이마에 경을
치게 한 적도있다. 이 경치기가 노비(奴婢)의 도망을 막기위한 수단이
되어 종들의 팔뚝에 낙동이노(駱洞李奴)니 제동박비(齊洞朴婢)니 문신을
하기까지 했다.

연비(聯臂)라 하여 뜻을 같이 하는 결의(結意)나 사랑의 불변을 팔뚝에
문신하여 하늘에 보증하는 습속도 있었다. 지난 주말 한일 축구전에서 한
꼴을 넣어 국민을 열광시킨 안정환 선수가 그 순간에 윗옷을 벗어
흔들었는데 그의 한 팔에는 믿음을 하늘에 보증하는 십자가가, 다른 한
팔에는 아내에게 사랑을 보증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안 선수가 옷을 벗은 것은 그 보증의 하늘에 대한 감사표시였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문신을 병역기피 수단으로 온몸에 시술한
일당이 검거됐다. 삼한(三韓)시대의 고대 한국 어부들이 큰 고기의
해침을 피하고자 온몸에 문신으로 위장한것이나, 잠수해 드는 간첩들의
몸에 문신이 베풀어져 있었던 것이나 같은 맥락으로 문신의 원시적
목적을 현대화, 병역기피로 원용한것이 된다.

충신, 효자, 열부들의 기록인 '조선명륜록(朝鮮明倫錄)'에 보면
국난(國難)에 남편이 전장에 나가는 전야에 아내는 울면서 남편의 등을
쪼아 문신을 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부전자자(赴戰刺字)라 했다. 이
문신에는 세 가지 목적이 복합돼 있었다. 전사했을 때 신원을 식별하는
표시가 그 하나요, 전사해서 시신을 찾지 못했을 때 문신하면서 나는
피를 훔쳐둔 베를 간직했다가 시신을 대신하는 것이 그 둘이며, 문신을
하면 불행 곧 마(魔)가 비켜간다는 속신이 있어 무운(武運)을 비는 뜻이
그 셋이다. 이처럼 문신은 우국(憂國)과 참여를 위한 긍정적 수단이기도
했던 것을 나라를 등지는 기피의 수단으로 타락시킨 것이 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