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날개접는 콩코드
8시간 걸리는 대서양을 초음속으로 3시간에 가로지른다는 것은 요원한
꿈이었다. 인류문명사의 전환점으로 대서 특필될 그 꿈을 이룬
초음속여객기 콩코드가 개발 중지된 것은 오래요, 다니고 있는
콩코드마저 11월을 기해 운항을 중지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잘못된
판단을 뜻하는 '콩코드 패러시'라는 말까지 생겼듯이 손님도 없고
만들어야 사가지도 않으며 개발비도 못 빼냈기 때문이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사는 데 그렇게 빨리 가는 것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며 과학 발달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 되어 주의를 끈다. 원유를
나르는 탱커도 큰 것이 40여만톤으로 알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100만톤
아니 그 이상 짜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겨우 수만톤짜리 하나가
침몰하는 것으로 한 나라의 해안이 파괴적인 타격을 받는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백만톤짜리가ㅡ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의학도 무한
발전하여 자동차 부속 갈아 끼우듯 돈만 내면 인공장기 갈아 끼워 수백
세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다 하자.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만이 죽지
않고 '걸리버 여행기'의 스트랄드부르그의 노인들처럼 되고 서민만이
죽게 되어 지금까지 가장 확실한 평등인 죽음마저 차별이 생기게 되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속도에 한계를 느끼고 크기에 한도를 느끼며
수명에 한계를 느끼는, 무한 극대화 무한 극소화에 저항을 느끼는 인간
요인을 문명의 인간지수(人間指數)라 한다.
250년 전 뉴턴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해변의 한 톨 모래알에
불과하다'했고, 파스칼은 '지식은 공과 같은 것으로 공이 커갈수록
미지와의 접점이 많아진다' 했다. 하지만 현대 최고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사람을 위해 알아야할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했다. 그는 보다 질이 좋은 원자핵 파괴장치를 만드는 일에 반대했는데
그 군사적 응용이나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에서 반대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에서였다. 더 이상 그 장치에 돈을 들인다 해도 미세물리학
연구에 진보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인간요소를 감안한
과학발전에 한계론이 득세하고 있고 그 현실적 구현이 콩코드의 퇴출로
나타난 셈이다. 인간 배려로 과학발전이 저해돼서는 안 되지만 인간을
도외시한 과학의 독주에 철학적 반성을 촉구하는 문명사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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