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이라크 대추나무

bindol 2022. 11. 7. 18:15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이라크 대추나무
입력 2003.03.23 19:16:29 | 수정 2003.03.23 19:16:29

비가 없는 건조한 황무지에서만 자라는 사조(沙棗)나무가 있다. 올리브나무처럼 생겼고 올리브 같은 향내가 나는 열매가 열리는 사막 대추나무다. 김옥균의 암살범인 홍종우(洪鍾宇)가 근무했던 파리의 기메 미술관에 가면 이탈리아 화가 카스테리오네가 그린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출렵도(出 圖)가 있는데 그 일행 가운데 서역(西域) 여인을 찾아볼 수가 있다. 실크로드 카슈갈에서 전리품으로 황제에게 바쳐진 이 미녀는 아름다움보다 향기로운 체취 때문에 향비(香妃)로 불리는 임금님의 애인이다. 그 향의 비밀이 카슈갈의 사막에 자라는 사조 열매 탕에서 목욕을 한 때문이다. 중국 북서부 사막에도 사조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닌데 향이 약해 건륭제는 멀리 실크로드 향비의 고국에서 이 사막대추를 대느라 국력을 소모시켰다. 수분이 없을수록 사조 뿌리는 30m까지 파고 내려 염분층에 뿌리를 박고 자양을 삼아 열매를 맺기에 대추 크기는 작아지고 몰골도 볼품은 없으나 감미나 향기는 강해지고 자양도 몇 곱절 많아진다. 고될수록 이를 이겨내면 보다 성공하는 인생을 닮은 사막대추다. 이라크가 위치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지역의 고대 전쟁에서 이 사조 열매만 먹고 석 달을 싸웠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중동의 사막에서는 양식이기도 하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음식을 갖지 않은 대상(隊商)들이 이 사막대추만으로 몇 달을 버티어낸다는 이야기가 있고 ‘구약성서’에서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12개의 샘과 70그루의 사조나무에 의지, 몇 달 동안 숙영(宿營)한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사막의 불사조는 이 사조나무에 깃을 드린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이 사조나무에 의지, 지구전을 모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첨단무기로 사막의 나무와도 싸워야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희랍에서 승리자는 올리브나무로 월계관을 엮어 씌웠듯이 이라크 사막지대에서는 이 사조나무로 월계관을 만들어 씌웠다. 그래서 전첩목(戰捷木)이라는 별명을 얻고도 있다. 세계적 초점이 되고 있는 후세인 대통령이 머리띠에 이 사조나무 잎을 주렁주렁 꽂고 자주 나타났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조나무에 용기를 비는 자구행위인지 사조정신으로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항전의지인지 모를 일이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釋一行  (0) 2022.11.07
[이규태 코너] 후세인과 살라딘  (0) 2022.11.07
[이규태 코너] 바벨의 탑 무상  (0) 2022.11.07
[이규태 코너] 폴란스키  (0) 2022.11.07
[이규태 코너] 포로 대우  (0)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