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우울증 방화
세상을 구성하는 3대 요인인 공간(空間) 시간(時間) 인간(人間)에 고루
사이 간(間)자가 들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 작가인
노신(魯迅)이 철학공약수(哲學公約數)란 말을 쓴 인간(人間) 속의 사이
간(間)은 사람은 사람과의 사이 때문에 인간이란 뜻으로, 둘 사이에
육체적 욕망이나 이해타산만으로 밀착되어 틈이 없으면 인간이 못 된다
했다. 서로간에 양보도 하고 겸허도 하고 사양도 하는 윤리 도덕으로
사이를 둠으로써 인간이 되듯이 시간과 시간 틈에도 사이를 두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 기원전까지 사람의 이동속도는 낙타의
이동속도인 시속 8마일이었던 것이 자동차가 생기면서 800마일로, 다시
우주선은 1만8000마일이나 시간 사이를 좁히고 있다. 거기에
패스트푸드니 즉석요리니 생활주변은 온통 시간의 사이를 좁히는 일에
한계를 상실하고 있다. 건물들로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공간, 자동차
행렬로 메운 도로공간, 지하철의 과밀인간군 등 공간의 사이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철학공약수인 사이의 징발로 현대인은 어느만 큼의 우울증에 걸려
있다. 과밀공간에서 키운 쥐와 여유공간에서 키운 쥐, 그리고 회전수레
속에서 타율적으로 길러진 다람쥐와 회전수레 없는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길러진 다람쥐에게 있어 우울증 발생 확률은 전자가 후자보다 12배나
높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우울증 전문병원에서 환자에게 둥근 달이 비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을 장시간 동안 들여다보게 하는 치료법을 쓰고
있다 한다. 선문답(禪問答)에 있는 '수급월불류(水急月不流)'―물은
바삐 흘러가도 달은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은 고속화사회의 인간변질에
저항력을 기르는 정신요법이 될 것이다. 과밀화에서 여유공간을 찾고
과속화에서 저속시간을 찾아 누리며 밀착된 인간 틈에 사이를 벌리는
덕목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우울증에서 살아나는 첨단 의학인 것이다.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는 바로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우울증
환자의 불특정 다수 상대의 범죄다. 지하철 내부구조를 불연성 재료로
개조한다느니, 정신이상 우범자를 격리시킨다느니 하는 말단 처방에
병행해 사이를 잡는 인간교육, 고속환상으로부터의 이탈,
과밀공간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사이를 되찾는 거시적 시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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