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졸업식 해프닝
졸업식을 마치고 쓰고 다녔던 교모, 교복을 찢고 얼굴에 밀가루를
뿌리는 가학(加虐)행위는 인생의 한 매듭을 짓는 해프닝으로 상식화돼
왔다. 한데 웬일로 밀가루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인지
액젓·마요네즈·계란·간장·고추장·케첩·식초까지 서로 뿌려대는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경사스러운 졸업이요, 축복받아야
할 인생 새출발을 이렇게 범벅으로 유린하는 까닭이 뭣일까. 한양에
사학(四學)이라 하여 네 개의 중등학교가 있었고 이 사학 졸업식에도
파금(破襟)이라는 해프닝이 없지 않았다. 교복이라고 할 푸른 두루마기,
곧 청금(靑衿)을 입고 다녔는데 졸업과 동시에 서로 달려들어 관과
청금을 찢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파금이라 했다. 이 같은 학대행위는
소년에서 성인이 되기 위해 치르게 돼있는 성년식(成年式)의 잔재로
삼한(三韓)시대부터 있어왔던 통과의례였다.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원시사회에서는 소년으로서의 생명체를 죽이고
성인이라는 새 생명체로 되살아나게 하는 살생행위가 수반되었으며
그것이 통과의례로 의식화(儀式化)된 것이 인신 학대라 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일정 기간의 격리, 가사(假死)상태, 신령과의 교감을 겪고
신체에 변형과 고행을 강요했다. 종족에 따라 다른데 고대 희랍에서처럼
신전에 들어가 환각을 볼 때까지 단식을 한다든지 기원전 이집트에서처럼
할례(割禮)를 베푼다든지 구석기시대의 유럽에서처럼 문신(文身)을
베풀기도 했고, 폴리네시아에서처럼 타고 있는 나무토막이 다 탈 때까지
벌건 숯덩이를 들린다든지 서해안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가시나무로
온몸에 피가 흐를 때까지 후려친다든지 독개미떼 속에 앉혀두는 등
고행과 시련을 거쳐야 했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은 한양에서는 백운대 뜀바위를 뛰어 넘는 것으로
성인이 되었고, 개성에서는 천마산의 벼랑에 오뚝 얹혀있는 바위를 안고
돌고 등지고 도는 담력으로 성인이 되었다. 지방에 따라 인분이나 미친
여인의 오줌을 얼굴에 칠하기도 하고 관을 거꾸로 씌워 개 헐레하는
시늉을 짓도록 하는가 하면 아버지 이름을 쓴 종이를 태운 재를 물에 타
마시게 하는 심신 곤혹 등으로 성인 변신의 의례가 다양화돼 있었다.
인생에 있어 변신의 매듭인 졸업에 이 성인식 의례가 야합, 범벅
해프닝을 있게 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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