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나물 종주국
나물 먹는 명절인 대보름을 계기로 나물 소비량이 근년에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에 비빔밥이 크게 유행하면서 한국 나물
수요가 급증한 것과도 무관하지않을 것이다. 흉년과 외난의 연속인
우리나라를 그 기근에서 구해낸 명줄이요, 빈곤의 상징인 나물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되어 눈물겹다. 식용으로서의 야생나물 문화는
우리 한국이 종주국으로 다이어트식품 시대의 글로벌 기류를 타고
주목되는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나물의 어원설에서부터 그것이 나타난다.
「동언고략(東言考略)」에 보면 신라 사람들은 물건 이름에 나라 이름인
라(羅)자를 즐겨 붙였다 하고, 나라를 라라(羅羅) 나락(稻)을 나라에서
받는 녹(祿)이라 하여 나록(羅祿) 백성이 많이 먹는 나물을
나물(羅物)이라 한다 했다. 강인부회한 것이지만 나물은 그만큼 백성이
많이 먹었던 국민적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흉년을 살아내는 슬프디슬픈 관행일 것이나 아홉 살까지는 33가지
들나물 산나물 이름을 외워야만 했고, 99가지 나물을 식별할 줄 아는
딸은 결혼조건에서 선택받았다. 그래서 남녀 없이 외워야 했던
나물타령이다.「한푼 두푼 돈나물/꾸부정 휘어 활나물/매끈매끈
기름나물/돌 돌 말아 고비나물/칭칭 감아 감돌레/집어뜯어
꽃다지/술마셨나 취나물/어렵살이 고사리/주지말라 달래야/아따 춥다
냉이풀ㅡ.」하는 식으로 나물 이름을 외웠던 기억이 난다. 대보름이나
입춘에는 파란 쑥, 붉은 비름, 하얀 도라지, 검은 고사리 등
사방색(四方色)을 갖추어 공식(共食)함으로써 잠재된 원한 갈등을
해소하여 화해하는 음식철학도 나물이 대행했었다. 이 나물철학이
사색당쟁의 탕평채(蕩平菜)로 발전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어렵살이 고사리'라 했듯이 고사리는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약전(藥典)에
독초로 기재돼있고 목초지에서 고사제로 고사리 죽이는 게 큰일인데
그것을 물에 우려 먹어내린 것은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한국의 나물문화의 폭과 깊이를 이해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 냉기단과 남태평양 열기단의 가장자리에 끼여 살아내기
고달픈 지정학적 위치에서 반만년 연명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나물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 국제화가 진행 중이라는 차원에서
감회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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