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속박이’ 의식
속박이란 선물이나 팔 물건을 상자에 담을 때 보이지 않는 속과 보이는
겉의 크기나 모양새, 때깔, 물이 같지 않다는 표리구조(表裏構造)의 속된
말이다. 명절 때마다 오가는 선물상자의 속박이는 자주 지탄돼 온
한국인의 약점이긴 하나 올해에도 여전히 소비자의 불만으로 상인들이
곤혹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내에 유통되는 과일상자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신용을 타락시키고 있는 속박이다. 홍콩
무역시장에 「코리안 애플박스」라는 무역용어가 있다고 들었는데 흥정할
때 내보이는 견본이나 카탈로그 내용과 실제 들여온 상품의 질이나
양이나 규격이 같지 않을 때 코리안 애플박스, 곧 「한국의
사과궤짝」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과 한 궤짝 사다
뚜껑을 뜯어보면 맨 위에는 크고 먹음직하며 싱싱한 놈이 깔려 있고 한
층 걷어내면 위에 깔았던 놈보다 약간 처진 놈으로 깔리게 마련이며
아래로 갈수록 작아지고 모양도 고르지 않으며 더러는 상한 놈도
나타나곤 한다. 이처럼 보이고 안 보이는 위아래가 같지 않음이 해외에
나가는 사과상자에서도 상식이 돼 있었다는 것이 되며 그것이 한국상품의
신용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본다.
한국인의 속박이 의식은 그 밖에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꽃종이로도
부족하여 은빛·금빛 포장지에 오색 리본으로 가로세로 매듭을 내는
현란한 포장문화도 속박이 의식의 표출이다. 한과(韓菓)는 내용물보다
그를 담은 세공 바구니에 값을 더 두는 외국인을 보았다. 곧 포장문화의
호화로 그 내용물이 초라해져 가고 있다 해도 대과가 없다. 한국 집들의
현관이나 대문 등 전면은 대체로 비싼 장식으로 잘 꾸미고 가꾼 데
비하여 보이지 않는 후면이나 측면은 꾸밈도 없고 지저분한 대로 두는
것도 속박이 의식의 나타남이다. 수(雄)사자는 얼굴둘레에 머리털을 세워
위엄을 부리지만 그에 가린 몸은 상대적으로 홀쭉하여 빈약하다 하여
속박이 집을 「라이온 건축」이라 한다.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의
직장이나 직위 그리고 어느 학교인지, 무슨 공부를 했는지, 학위나
부모·처가의 배경 등 포장을 보고 평가하고 그 포장을 위해 일생을
낭비하는 한국인이다. 인간은 그 껍데기 속 호두나 건포도처럼
메말라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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