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누란 미인

bindol 2022. 11. 10. 16:45

[이규태 코너] 누란 미인

조선일보
입력 2003.02.14 20:20
 
 
 
 


5세기 이전에 모랫바람에 묻힌 실크로드 왕국 누란(樓蘭)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소설의 소재로 빈도 높게 선호되었던 환상의 도시다. 거대한
한(漢)나라와 흉노와의 틈에 끼여 완충 정략으로 유지되다가 현장(玄
)법사가 이곳을 지내가던 당나라 때는 모래톱에 들쭉날쭉한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하고 '날리는 모랫바람 속에 인적은 없고 사방이 망망하여
표지삼을 아무 것도 없으며 그저 군데 군데 인골을 주워 모아 도표를
삼을 뿐이었다. 물도, 풀도 없고 바람만이 전부인 데 어떻게 들으면
여인의 통곡소리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한 품은 여자의 노랫소리
같기도 하다. 그 소리에 홀려 헤매다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했다.

한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누란왕국에서 인질 잡혀온 왕자는 잡혀 오는
족족 거세를 당했는데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였으며 누란에서는
교통수단인 낙타 한 마리와 나이 어린 아가씨 한 명을 맞바꾸었다는
죽간(竹簡)기록도 있다. 슈타인, 헤덴 등 유명한 탐험가들의 유적발굴도
활발하여 살아있는 듯한 살결을 한 여인의 미라가 발굴되어 누란ㅡ 하면
미녀를 연상하고 동서 소설가들을 자극한 것이다. 일본 실크로드 작가
이노우에(井上靖)는 소설 '누란'에서 왕국이 멸망하는 날 젊은 왕비가
독초를 입에 머금고 자살 호수에 묻힌 것을 스웨덴의 탐험가 헤덴이
미라로 발견한다는 줄거리다. 한국작가 윤후명(尹厚明)도 이 누란의 미라
여인에 자극받아 서역 악기인 공후, 서역 가면극인 사자춤, 그리고
서역기행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으로 누란과 한국의 시공(時空)에
환상의 다리를 놓았다.

중국에서는 서역의 피가 흐른 미녀인 양귀비(楊貴妃)의 풍만 미와
누란의 미라 미인을 비교, 양귀비가 누란계 미인이라는 설을 낸 학자까지
있었다. 그리하여 앞으로 누란에서 미라가 다시 발견되면 유전자를 채취,
복제하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하여 누란의 유적이나 왕릉 발굴에 환상의
부가가치가 가중해 오고 있던 터다. 이런 와중에 누란 왕국이 있었던
뤄부포(羅布泊)에서 도굴범의 차량바퀴를 추적한 끝에 군신(君臣) 벽화가
그려져 있는 누란 왕릉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도굴당한 후인지라
빈 장식관만 남아있었다 하니 누란 미인의 복제는 또다시 미뤄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