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고구려 정신
당나라에 병합된 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은 대단했던 것 같다.
중국문헌인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고구려 백성들 여기 저기에서
이반(離叛)이 심하여 (당나라) 황제는 고구려 백성 3만8200호를 황무지에
옮겨 살게 하고 이반하지 않은 자들만 요동 지방에 눌러살게 했다」
했으니 반골들의 황야에의 대추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추방당한
황무지가 영주(營州) 곧 지금의 열하성 조양(朝陽)지방이다. 망국
이전에도 당나라에 당당히 굴었기로 거만하게 높을 고(高)자를 국호에
썼다하여 이를 아래 하(下)로 바꿔 하구려(下句麗)로 불렀던 한때가
있었을 정도였다.
강제이주당한 고구려 유민 중의 한사람인 걸걸중상(乞乞中象)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도독 을 죽이고 옛 고구려 실지(失地)에 들어가 당나라
소탕군과 맞싸웠으며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진(震)나라를
건국했다. 진(震)이란 동방인 진(辰)방에 있는 해뜨는 나라로 잃었던
고구려를 뜻함은 물론이다. 이 진나라가 아시아 동북방에 군림했던
발해(渤海)국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폴레옹이 넘었던 알프스
준령보다 몇 곱절 험준한 파미르의 다르코트 준령을 대부대를 끌고 넘어
외침을 다스렸던 세계사의 명장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아버지도 바로 이
영주지방에 강제 이주당한 고구려 유민이었다.
「주간조선」 설날 특대호에 발굴 보도된 잊혀진 왕국 제(齊)나라도 바로
이 영주에 강제 이주당한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와 그의 아들
이납(李納)의 쿠데타로 세워진 나라다.원래 산동성 지방에 있었던
제(齊)나라를 계승하여 국호를 삼았는데 오래가지 못했지만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널리 뿌리박고 있었던 고구려 유민들의
가세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서에는 이를 고구려 근성이라고 했지만
되살려야 할 고구려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산해관에서 베이징 가는 구길에 거치게 돼 있는 영주지방에는 고구려
축조방식의 조선성(朝鮮城)이며 고려보(高麗堡)란 지명이 남아있다.
조선조 사신들이 이곳을 지날 때 수양딸 삼기를 다투고 주식값을 받지
않는 환대를 받았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는데 이곳에 애오라지 숨쉬고 있는
고구려 정신이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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