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야생초

bindol 2022. 11. 14. 15:31

[이규태 코너] 야생초

조선일보
입력 2003.02.03 20:07
 
 
 
 


덴마크의 중세도시 오덴세에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생가를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구두수선을 했다는 가난했던 집으로 정원도 없고 응달진
두어 평 남짓한 땅에 자갈만 깔려있었다. 그의 동화들에 보면 이름 모를
초화(草花) 이야기들이 아름답게 승화돼있어 분명히 잡초꽃들이
엉클어진, 가꾸지 않은 넓은 정원이 있을 것으로 상상했었다. 세탁으로
품팔이하는 그의 어머니는 알콜중독으로 죽어가면서도 길 가다가 야생의
초화를 보기만 하면 옮겨다 심기를 수십년 했기 때문이다. 관리하는
노인에게 물었더니 마당이 없어 낡은 과일 상자들에 흙을 담아
길렀다면서 창변 아래 쌓아놓은 이끼 낀 상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의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야생콩이 콩깍지에서 튕겨져나가 어느
병들어 누워있는 소녀의 창변에 뿌리를 내린다. 덩굴이 자라 창백하게
죽어가는 소녀를 향해 꽃을 피우자 소녀는 환한 얼굴로 이 야생화에
키스를 한다. 이를 본 어머니는 말한다. 「하느님이 스스로 심어주셨다.
너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자 이렇게 덩굴을 네 가까이 인도하셨단다.」
이름없는 초화들을 이렇게 아름답게 승화시킨 안데르센의 야생 화원인
것이다.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가는 죽음의 행진 대열이
갑자기 멎었다. 한 수인(囚人)이 콘크리트 벽 틈에 피어난 노란 잡초꽃을
들여다보고 마치 자기 생명을 그 꽃에 전이시키는 듯 환한 얼굴을
짓고있었기 때문이다. 뒤돌아보길 수없이 하며 총부리에 밀려간 그
수인의 환한 얼굴은 가스실에 들어가기 작전까지 지워지지 않았다는
목격담을 읽은 기억도 난다. 본지가 선정한 이달의 책 「야생초 편지」도
장기수 황대권씨가 옥살이하면서 형무소 안팎에 피는 이름 모를 야생초를
옮겨 심어 옥중 야생초 화원을 일군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삶에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창변의 소녀나 가스실 문전의 유태인처럼 희망을
안겨준 이야기다.

크고 곱고 현란한 외래 초화에 밀려 바라보지도, 밟혀 죽어도
아랑곳없이 멸종해가는 토종 들풀을 가꾸고 아끼는 대구 꽃무리회, 부산
들꽃 모임, 청주 무심야생초회 등 각 도시들에 들꽃 모임이 늘어가고,
고을마다 들꽃 공원 마련과 들꽃 발굴에 경쟁을 하고있다. 비단
야생초뿐이 아니라 외래에 치여 밟혀 죽어가는 토종문화에 희망을
안겨주는 문화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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