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누비 옷

bindol 2022. 11. 14. 15:29

[이규태 코너] 누비 옷

조선일보
입력 2003.02.04 20:33
 
 
 
 


스타인벡의 단편소설에 큰 토관 속에서 사는 가난한 일가족 이야기가
있다. 아내가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베 나부랭이를 이어 토관 속에 커튼을
만들어 치자 남편이 창도 없는데 커튼은 쳐 뭘 하느냐고 빈정거리는
대목이 있다. 미국의 개척시대에는 영국이 자국의 무명산업을 보호하고자
목화를 기르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베가 금값이라 색과 무늬 재질도 다른
베 조각들을 이어 옷도 지어 입고 커튼도 만들어 달았다. 이를 퀼트라
하는데 미국인의 근검 절약과 인내력의 상징으로 풍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매김하여 경제위기 때마다 극복해낸 것이 퀼트정신이었다 해도 대과
없는 정신 직물이다.

미국의 퀼트정신이라면 한국에는 누비정신이 있다. 겉베와 속베 사이에
솜을 깔고 일정한 골, 일정한 바늘땀으로 비뚤어짐 없는 이 누비보다
수공과 정성이 더 든 옷은 없을 줄 안다. 갇힌 채 억눌려 인간을
극소화시키며 살아야 했던 옛 어머니들은 누비 바느질감을 항상 장롱 한
구석에 간직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가슴 아프거나 슬프거나 분하거나
억울하거나 원한이 사무치거나 할 때면 조용히 누비 일감 꺼내어 한 땀
한 땀 누빔으로써 억하심정을 날려 희석시켰던 것이다. 같은 행동의
정시(定時)적 되풀이는 아기 재울 때 다독거리듯이, 산사에 종소리
들려나오듯이 안정으로 유도한다는 것은 심리학에서 과학이다. 이
누비질을 인고봉(忍苦縫), 곧 괴로움을 참는 바느질이라 했음도 그
때문이다. 언젠가 노모가 걸레질하며 눈시울을 닦고 계시기에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걸레가 바로 노모가 평생 누벼왔던ㅡ그래서 어머니의
일생이 그에 농축돼 있을ㅡ누비 저고리 해진 것이었다.

콩 타작시켜 콩들이 마당에 얼마나 깊이 박혔느냐로 머슴들 속마음
살폈듯이 시어머니가 며느리 속마음 살피는 데는 누비질 감 몰래 꺼내어
골이 비뚤어지거나 고르지 않거나 땀 폭이 들쭉날쭉한 것 등으로 열 가지
속마음을 헤아렸다. 스님들의 누비옷은 이를 공양하는 보살님들의
수도행위였고ㅡ. 누비옷은 한국적 정신의 한 존재방식이요, 한국의 정신
직물이다. 일본에서 인기리에 열렸던 미국 퀼트 페스티벌에서 한국의
누비장인(匠人) 김해자씨의 누비옷이 초대 전시되어 기능을 초월한
정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여, 옷에 스민 정신을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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