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동물 민주주의

bindol 2022. 11. 15. 08:41

[이규태 코너] 동물 민주주의

조선일보
입력 2003.01.17 19:02
 
 
 
 


무리 군(群)자를 풀어보면 '君+羊'이다. 일사불란하게 임금을 따르는
양떼처럼 무리진다는 뜻모음 글씨 같다. 하지만 군(君)은 임금뿐 아니라
하늘의 뜻을 땅에 중개하는 섭리(攝理)를 뜻하기도 하며 양은 순하기에
타율적으로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섭리에 의해 무리진다는 뜻모음
글씨다. "목동이 아무리 몰아도 움직이지 않는 방향의 산 너머에는
목초가 없다"는 히말라야의 속담도 양떼가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영국의 한 동물 연구팀은 사슴이나 물소 백조 쥐 등
무리져 사는 짐승들은 그 무리의 늙은 것이거나 어미들의 과반수가
동의하는 동작이나 신호를 보였을 때 집단이동을 하거나 공동행위에
들어가는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을 관찰 보고했다.

아프리카의 자연공원에 가면 사자가 졸고 있는 이웃에 사슴떼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잡아먹고 먹히는 자의 평화공존에 의아심을
품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자는 사슴 한 마리 잡아먹으면 사나흘 동안
거들떠 보지않게 돼있으며 그 동안 사슴떼들은 자칼이나 표범 같은
짐승으로부터 보호받고자 사자곁에서 신세를 진다. 그러다가 사자가
식욕이 동하는 것을 노련한 암사슴들이 감지, 합의의 기성을 지르면
사슴떼는 필사의 탈주를 하고 탈주를 한다. 이처럼 종족보존을 위한
민주주의 섭리로 밀림의 왕국은 나름대로 합리화돼 있다.

갈릴리 호수의 벼랑에서 2000여마리의 돼지떼가 줄줄이 호수에 투신해
죽는 신약성서의 기록이며 울릉도에서 고양이만한 쥐떼가 벼랑에 줄지어
몇날 며칠 바다에 투신했다는 기록이며 북구에서 바다에 투신한 쥐
수백만마리가 폭 5㎞의 띠를 이루고 흐르는 바람에 기선이 뚫지 못했다는
기록 등 과잉 번식으로 먹이가 고갈하면 합의에 의해 적정수가
순사(殉死)함으로써 종족을 보존하는 레밍현상도 민주주의식 의사의
합의없이 불가능한 동물행동이다.

수천마리의 양이 움직이는 것은 막대 하나 든 목동의 파워 때문이
아니다. 어느쪽으로 가게 돼있는 양들의 합의에 의해서 움직이는것이며
숙달된 목동은 그 허용 범위를 벗어나는 이단 양만을 뒤에서 추스르며
양들의 합의를 존중한다고 들었다. 짐승을 뒤쫓으며 나를 따르라는
수렵형(狩獵型) 리더십은 가고 민주주의적 의사를 존중하여 뒤에서
추스리는 목양형 리더십의 도래를 새삼스럽게 하는 동물들의
군락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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