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인터넷 살생부
허실을 알 수 없는 유언(流言)에는 세 가지가 있다. 히틀러가 살아있을
때 세 번 이상 히틀러가 죽었다는 유언이 나돌았다. 이것은
그러했으면―하는 원망(願望) 유언이다. 2차대전 당시 진주만 공격 때
미국 태평양함대가 전멸했다는 유언이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는 두려움과
불안을 반영하는 공포(恐怖) 유언이며, 2차대전 중 미국에 특정 종교
신자들이 병역을 기피하고 있다는 유언이 나돌았는데 집단이나 공동체의
이간을 노리거나 해치려는 분열(分裂) 유언이다. 미국에서 수집한 이상과
같은 2차대전 중의 유언 1089건 중 다수(66%)를 차지하는 것이
분열유언이었다.
언로가 틔어 있을수록 유언은 반비례해서 사라진다던데 세상에서 가장
언로가 틔어 있는 미국에서의 일이고 보면 여타는 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관권에 민권이 억눌리고 양반에 상민이 억눌렸으며 남성에 여성이
억눌리고 인륜(人倫)에 인간이 억눌려 온통 언로를 틀어 막히고 살아온
한국인은 대체언로(代替言路)인 이 유언에 민감했고 쉽게 넘어가며
따라서 잘도 만들어내고 영향력도 컸다. 그 더욱 억눌려 볕이 들지 않은
음습한 응달에서 자신을 숨기는 익명 분열유언이 버섯처럼 왕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에서 이 분열유언은 노래를 탄 참요(讖謠)와 벽에 붙이는
은닉서(隱匿書)로 대별된다. 전자는 「우리 임금님 귀는 노새의 귀」라며
신라 경문왕 때부터 있었고 후자도 진성여왕이 정부(情夫)와 놀아나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내용으로 일대 필화사건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처럼 역사도 유구한 은닉서는 문정왕후가 간신에게 농락당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양재역 벽서로 대학살이 수반된 사화로 발전했었다. 정조
때만해도 어찌나 은닉서가 많았던지 이를 붙인 자를 잡으면 10냥의 은을
주기까지 했다. 문란했던 한말에는 수령 세 사람에 한 사람꼴로 은닉서로
상처입었다 했고 개중에는 짐승피로 혈서를 위장하기도 하여
위혈(僞血)감정사가 출현하기까지 했던―우리나라는 익명 음해의 전통이
탄탄하다. 이 은닉서가 중국 문화혁명 때 대자보(大字報)로
자리매김하더니 인터넷의 이기(利器) 속에 둥지를 튼 것이다. 민주당
살생부는 분열유언의 표출방법이 달라져 왔을 뿐 통(通)시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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