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三才圖會
동남아며 중남미 등 고추 나는 곳은 많다. 이 외산 고추로 김치를
담그면 그것은 맵디매운 맵치지 김치가 아니다. 한국고추만큼 감칠맛이며
감미가 없다. 평양냉면 본고장에서는 면에 고춧가루 타 먹는 것이
상식인데 맵게 먹으려 해서가 아니라 한결 맛이 더하기 때문이다. 그
은근한 감미가 고달픈 석회질 많은 땅에서 자란 고추일수록 더하다는
것은 우리 고추 명품들의 생산토양 분석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물 없는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 소금땅에서 시달리며 자란 네게브 복숭아가
세상에서 제일 달다는 섭리도 그것이다. 세상의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 살며 단풍이 고울 뿐 아니라 환경 오염물질인 아황산가스에도
강하며 잎의 약효도 큰 것이 한국 은행나무다. 은행은 한국의 동일성
나무다.
이처럼 기후·풍토·지질·수질 등 자연의 복잡한 맥락 속에 그 나라 그
땅에 적성인 식생이 있듯이 문화도 그 여건 속에 개성을 갖고 활성을
띠며 오래 살아남고 발전하는 자질이 있다. 이를 그 나라 문화의
동일성(同一性)이라고 한다. 이 동일성을 망각하면 좁아지는 지구촌에
투자할 아무 것도 갖지 못해 소외당하고 멸시당하게 마련이다. 한데
구미(歐美) 사대주의가 거세게 몰아붙여 그 노도에 문화 속의 동일성이
휩쓸려 나가고 있는 지 오래다. 조상들이 일궈 놓은 그 많은 동일성이
매장되거나 소실되고 있으며 이것은 발달한 구미문화나 학문을 들여와
접목시킬 원목이 고사해 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인지라 그 묻힌 동일성의 원광석(原鑛石)들을 주워 모아
분류하는 작업 하나가 돋보이기만 하다. 우리나라 옛 문헌들에 실린
그림이나 도표들을 총집성하여 분류한 그림한국학 분류사전이랄
'한국삼재도회(韓國三才圖會)'가 나왔다. 삼재(三才)는 천(天) 지(地)
인(人)으로 만물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해서 얻은 이름으로, 이미
중국에서는 근 400년 전 명나라 때 황제의 특명으로 106권으로 편찬됐고
일본에서도 근 300년 전 이를 본떠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105권을 편찬, 제나라 국학발달과 외래문화 접목에 큰 역할을 해왔다.
산재한 문헌 속에 찾아 세워야 할 동일성 원목작업이 막중한 데도 이를
돌아본 어떤 정부도 없었던 터에 한 개인의 분투가 돋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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