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松商 徐成煥
송도(개성)상인인 송상(松商)의 점포를 송방(松房)이라 했고, 송방에는
상도(商道)를 집약하는 의(義)·신(信)·실(實)이라는 삼도훈(三道訓)이
걸려 있게 마련이었다. 의는 더불어 일하는 사람과 친화하고 동업자와
의리를 지키며 협동하는 일이요, 신은 고객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며,
실은 현실속에서 부딪치는 장사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근검하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고 상업규모도 대형화하고 경영이론도
발달했는데 이 세 가지 상도를 지켜내기란 어렵기 그지없는 일인데 이
삼도훈을 끝까지 지켜 현대경영으로 승화시킨 마지막 송상 서성환
태평양회장이 타계했다.
그 중 서 회장의 실(實)의 철학을 보아보자. 화장품을 처음 만들 때
일이다. 크림통을 만들 수 없었던 때인지라 서 회장과 부인 변금주
여사는 허술한 배낭 하나 메고 쓰레기통을 전전하며 일제 우데나
구리무통을 줍고 다녔다. 손수 원료를 지고 메어 날라다가 여느 가마솥에
끓여 소독한 구리무통에 담아 전차 타고 다니며 가가호호 방문판매를
했다. 옛날 일용품을 방문판매하는 무시로장수는 개성에 도가를 두고
팔도에 판매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상도(商道)가 있었다. 곧
부지런히 고객과 접하라는 족(足), 접해서 장사 이외의 대화를 자주하여
접근하라는 구(口), 그래서 친(親)해지면 외상을 주어 믿음(信)을 얻은
다음 장사(商)를 하라는 이 송상의 상도를 서 회장은 손수 실천했고 후에
'아모레아줌마'로 소문난 방문판매로 세일즈업계에 돌풍을 몰아쳤던
것도 바로 이 족(足)·구(口)·친(親)·신(信)·상(商)의 송상철학의
구현이었다. 외식하러 나간 서 회장을 급히 찾을 일이 있으면 으레
재래시장의 구지레한 순대국집 찾아헤매는 것이 상식이었으니 여타는
말할 나위가 없겠다.
반세기 동안 한국 여인들의 외모를 예쁘게 만든 서 회장은 외모 아닌
내모(內貌)도 예쁘게 하고 싶었다. 차(茶)는 옛부터 마음의 화장품이라
했음에 암시받은 서 회장은 농업학교 다닐 때 꿈이었던 농장경영과
접합시켜 제주도에 100만평 넓이의 차밭을 일궈 한국 차문화에 대변혁을
이루었다. 이 차밭 한 가장자리에 조그마한 농막 하나 지어놓고 서
회장은 손수 차밭을 가꾸었으니 바로 실(實)의 사상구현이다. 500년
이어온 송상(松商) 정신은 이렇게 징발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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