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진통 母乳

bindol 2022. 11. 15. 08:51

[이규태 코너] 진통 母乳

조선일보
입력 2003.01.07 20:11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피를 빼는 아픔을 주었을 때 젖 아닌 다른
것을 먹였을 때에 비해 현저하게 아픔을 덜 느꼈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되었다. 18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것이기에 신뢰가 가는, 모유의 다른
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모유가 장수에 좋고 살결을 희게 하며 머릿결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동서양의 고전에 나오는 비방이다. '본초강목'에
보면 양성(穰城)에 240세 넘도록 산 노인은 증손자의 며느리 젖만을 받아
먹었다 했고, 한나라 장창(張蒼)은 늙어 이가 다 빠진 후에도 100여명의
처첩을 곁에 두고 그녀들의 젖만을 마시고도 100세를 넘겨 살았다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의 왕비 포파이어는 여행할 때 500여 마리의 나귀를
몰고 다녔는데 그 젖으로 목욕하고 세수하는 것을 거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고 머릿결을 윤택하게 하는 데는
나귀 젖도 사람 젖과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모유에 진통효과가 있다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릴적 눈에 붉은
핏발이 서는 '눈의 피'라는 눈병이 무척 유행했었다. 이 눈병에 걸리면
바늘로 쪼듯이 아팠던 기억이 나며 아파서 징징대면 어머니는 뒤란으로
끌고 가 젖가슴 젖히고 젖을 짜 눈에 넣어주었던 것이다. 비단, 눈뿐만
아니라 놀다가 다친 데 종기가 나려 하거나 부으려 할 때 무척 아프게
마련이다. 이러할 때도 어머니는 젖을 짜 발라주었던 것이니 어머니 젖은
만병통치였다. 엄마 손은 약손 하듯이 바를 약은 없고 그저 정신적
진통효과만이라도 노리는 의료 민속이려니 했는데 실제로 진통효과가
확인된 셈이다.

한데 '본초강목' 등 체험방에 의하면 유즙은 눈병에 좋고 붓고 다친 데
빨리 곪도록 하며 초산의 병 없는 부인의 젖이 효력이 배가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젖의 진통효과에서 얻은 체험방일 확률이 높다. 왜냐 하면 젖을
바르면 아픈 기운이 가시기에 나은 것으로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으뜸가는 명가 합스부르크가(家) 사람들은 대대로 심신이
건전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저력을 고루 갖추었으며 미모로 알려져
있는데, 그 비결은 반드시 어머니 젖으로 기르게끔 한 것이 가법(家法)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모유는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진통제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