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반지찾기 소동
톨스토이는 하룻밤 자고 오는 기마(騎馬)여행을 즐겼었다. 애독서와
세면도구를 담은 백합꽃 수놓인 작은 가방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어느
개울가에 쉬고 있을 때 어머니 손잡고 지나가던 예닐곱 살 난 소녀가 그
가방을 보고 갖고 싶다고 칭얼댔다. 톨스토이는 이 다음 올 때 반드시
갖다주겠다고 약속하고 주소를 적어들고 돌아왔다. 1주일 후 가방을 들고
찾아갔더니 이 소녀는 급병이 들어 죽어 마침 장례를 치른 후였다. 필요
없게 된 가방을 도로 가져가시라는 어머니에게 톨스토이는 말했다.
"따님은 죽었지만 약속한 내 마음은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습니다"하고 가방을 영전에 놓고 왔다. 연전
톨스토이의 고향을 찾았을 때 이 가방 이야기를 했더니 야스나야파랴나란
곳에 이 작은 약속을 기리는 톨스토이의 가방비(碑)가 서있다는 말을
들었다.
영국 근대의 대정치가 글래드스턴이 네 번째 총리로서 국회에서 야당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을 때였다. 직원 하나가 올라와 총리의 귀에 뭣인가
속삭이니까 총리는 공격을 연기해달라며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장내는
"답변 기피다! 직무 유기다!"며 던져대는 집기가 난무했다. 그렇게
뛰어나간 이 대정치가가 찾아든 곳은 병원이요, 죽어가고 있는, 그의
마차를 끄는 늙은 마부 곁이었다. 마부는 글래드스턴의 손을 쥐고
조석으로 돌봐온 온정에 미소지으며 죽어갔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국회는 숙연해지고, 작지만 대영제국보다 큰 이 사랑에 기립 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훌륭하다는 것은 규모가 크고 뜻깊으며 경제적 가치가 큰 일에만
기생하는 것이 아님을 실천한 톨스토이와 글래드스턴이다.
지난주 일본 산토리홀에서 작은 장난감 반지의 해프닝이 있었다는 보도는
이 작지만 큰 아름다움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인 청중도 적지
않았던 이 연주회 도중 한국 초등학생인 한 소녀가 장난감 반지를
빠뜨렸다. 근간에 귀국한 친구와 잊지 말자고 사서 낀 천여원짜리
싸구려반지다. 아버지가 같은 걸 사주겠다고 달랬지만 막무가내자 홀
관리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의자를 들어 치우는 대수색작전을 한 시간 남짓
폈다 한다. 장난감반지가 아닌 마음을 비싸게 보았다는 데 느껴지는 게
있는 톨스토이의 가방이요 글래드스턴의 마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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