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산타옹과 조왕신

bindol 2022. 11. 16. 16:20

[이규태 코너] 산타옹과 조왕신

조선일보
입력 2002.12.24 19:51
 
 
 
 


도교의 최고신이요, 만인의 운명을 관장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동짓날이면 부엌에서 그 집 식구 운명을 다스리는 조왕신( 王神)들을
천상으로 불러드린다. 1년 내내 그 집안 사람들의 선악을 낱낱이
상제에게 고하고 그에 걸맞은 새해의 길흉(吉凶)을 배정받고 섣달 그믐날
밤 하강한다. 굴뚝을 통해 드나드는 조왕신을 맞는 날, 굴뚝 밑과 부엌은
물론이고 대청·외양간·샘가·곳간·장독대·측간 할 것 없이 환하게
불을 켜놓고 이 운명의 사자를 겸허하게 기다린다. 물론 이날 밤 잠을
자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전파된 이 조왕신 풍습은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 등 아시아에 널리 번져 있다.

크리스마스 때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탄생지역이
독일·터키·노르웨이 등 설이 구구하고 그 이름도 다양하며 수호신으로
모셔내린 곳도 러시아·그리스·시칠리아 등 다양하다. 또한 토속 관습과
성탄과도 배합되어 정체를 가려보기 어렵게 돼 있다. 다만 공통된 것은
산타 할아버지가 오는 때는 동지 전후인 12월 24일 전후라는 것, 불을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 굴뚝으로 드나드는 부엌신이라는 것, 그리고
선물을 들고 와 신발이나 양말 속에 넣어두고 간다는 것, 크리스마스
트리가 말해주듯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의 크리스마스 풍습은 한국의 조왕신 풍습과 너무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양말과 유사한 풍습으로 동짓날 버선을 지어 바치던
동지헌말(冬至 襪)을 들 수 있다. 송나라 때 동짓날 버선을 지어 바쳐
복을 비는 관습이 있었고, 이것이 민간으로 퍼져 시부모에게 버선을 지어
바쳐 수복(壽福)이 길어지길 빌었다 했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동짓날 시부모에게
헌말하는 풍속을 적고 동지부터 해가 길어지기에 수(壽)도 따라 길어지길
바라는 뜻이라 했다. 신발이나 버선은 신고 벗는 행위에서 성행위를
상징하는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다. 곧 동짓날에 버선을 지어 바치는
것은 이날이 음기(陰氣)가 다하고 양기(陽氣)가 자라기 시작하는
날이기에 부모님의 성생활을 주술적으로 기원하는 행위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원초적 불의 숭배가 동서로 갈리어 기독교를 만나
산타클로스가 되고 도교와 만나 조왕신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조선일보
입력 2002.12.24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