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동대문 운동장

bindol 2022. 11. 17. 05:22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동대문 운동장
입력 2002.11.28 20:28:30 | 수정 2002.11.28 20:28:30

서울의 원대한 개발 비전은 이원화하여 현대적 개발은 성 밖에서 다하고, 성 안에는 빈터가 나오는 족족 그곳에 숨쉬고 있는 역사를 부활시키고 재정이 되는 대로 중요 역사 유적을 되살려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청계천 복원은 바람직하다. 한데 우리나라 군(軍)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농축된 유적지인 훈련원(下都監) 터인 서울 동대문운동장의 잔디를 거두고 시영 주차장으로 만들 계획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훈련원은 지금의 사관학교, 육군대학교, 하사관학교를 통합시킨 장병 선발 및 교육기관으로 무과(武科)의 본향이다. 고종조에만도 390칸의 건물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꽤 컸던 병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효종 때는 이곳에 외인부대를 두어 경주에 난파 표류했던 벨테브레가 부대장으로 있었고 하멜 일행도 격리 수용되기까지 이 훈련원 외인부대에서 기숙했었다. 성종 때 이 훈련원에서 한국인의 텃세의 강도를 말해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전군의 사열이 있어 참모총장이랄 도총관(都摠管)인 변종인(卞宗仁)이 사열대에 앉아있는데 고참 하사관인 권지 이극다 등이 대뜸 나타나 도총관에게 삿대질하며 “변종인 이놈! 어느 상좌에 앉아있느냐”고 호령하는 것이었다. 이 하극상을 중대시한 성종은 이 고참병을 직접 불러 국문했는데 “무과 출신은 당상 당하관을 막론, 부임을 하면 술과 안주를 마련해 고참들과 훈련원 남행랑에서 상견지예를 거친 다음 벼슬에 경칭을 붙이고 복종하는 것이 관례요, 그러지 아니하면 아무리 당상관이라도 막 이름을 불러 모욕을 주는 것이 고풍입니다” 했다. 별기군(別技軍)이라 하여 일본 호리모토(堀本) 육군중위를 초빙해 세검정 밖에서 근대식 훈련을 시키면서 훈련원 병사와 차별대우한 데서 발발한 임오군란 때, 증오의 표적인 호리모토를 잡아다 린치 끝에 살해한 곳도 훈련원이요, 훈련원 병사들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군란 후 청나라 장수 오장경(吳長慶)이 5000 병력을 이끌고 입성, 훈련원에 주둔했고 그 후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이끈 2000 병력도 이곳에서 합류했으니 대단한 규모였던 것 같다. 갑신정변 때는 위안스카이가 고종황제를 이 훈련원에 대피시키기도 했으며 한말 일본에 의해 강제해산당한 군대가 의거를 하기도 했던 반일 기지다. 그 역사를 살리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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