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베풀면 오래산다

bindol 2022. 11. 17. 05:24

[이규태 코너] 베풀면 오래산다

조선일보
입력 2002.11.26 20:37
 
 
 
 


미국 심리학회지 최신호에 남에게 베풀고 남을 돕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두 곱이나 오래 산다는 추적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장수 부부
세 쌍에서 두 쌍꼴로 선행을 일상처럼 했고, 남과는 전혀 무관하게 산
사람은 일찍 죽을 확률이 두 배나 높다 했다. 조선조 명종 때 점 잘
치기로 소문난 홍계관(洪繼寬)이라는 이가 있어 나라에서 국사나 정승
판서들의 길흉에 대해 맞히지 않은 것이 없어 상류사회를 주름잡고
있었다.

이에 당대의 명정승 상진(尙震) 대감도 매사를 홍에게 점을 쳐
대비했는데 맞히지 않은 것이 없어 죽을 날까지 알아 여생을 정리해왔던
것이다. 상 정승이 죽는다고 예언한 연월일을 전후하여 홍계관이 일이
있어 전라도에 가 있었기에 한양에서 내려오는 사람마다 붙들고 상
정승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예언한 그 한 해가 다 가도록 아무런
변고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상경해 상 정승을 찾아가니 명(命)이
작년으로 다한 줄 알았는데 어찌 맞지 않는가 했다. 심력을 다했기에
틀릴 리는 만무하다 하고 다만 남에게 알리지 않고 베푼 음덕(陰德)이
있으면 운명도 감당하지 못한다 하고 지난날에 알지 못하게 베푼 일이
기필코 있을 것이오니 살펴보십시오 했다.

상진이 말단 벼슬자리에 있을 때 집으로 돌아가다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
술잔 한 쌍을 주운 적이 있었다. 보기에 대전(大殿) 수라간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물건이기에 아무날 물건 잃은 사람은 아무 데 가서
찾아가라고 방을 붙였다. 후에 알고 보니 대전 수라간 별감이
자질(子姪)의 혼사가 있어 몰래 빌려 쓰려고 갖고 나왔다가 잃은
것이었다. 참수(斬首)감의 큰 일을 아무도 모르게 베푼 일 때문에 운명의
신도 수명이 다한 그 날을 지킬 수가 없었디는 홍계관의 풀이였으며, 그
후에도 15년이나 더 장수를 했다. 이 연수(延壽)도 상 정승의 할아버지
상영부(尙英孚)가 어려운 사람 돈 빌려주고 받은 산적한 채권을 모두
불태워버린 데 대한 음덕이 가세한 것으로 소문났었다. 평생을 베풀고 산
록펠러와 카네기가 장수한 것도 베풂의 생리 함수 때문이라는 심리학설도
있었듯이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보상받는다는 전근대적 진리의, 첨단
과학으로서의 재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