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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정은]‘미스터 에브리싱’의 방한

bindol 2022. 11. 18. 05:41

[횡설수설/이정은]‘미스터 에브리싱’의 방한

입력 2022-11-18 03:00업데이트 2022-11-18 03:15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즐겨 읽는다. 왕좌의 권력 다툼 과정 등에서 부딪힌 역경을 이점으로 바꾸는 방법을 고전 병법서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늘상 자정 넘어서까지 일한다는 그는 경제부터 외교안보, 문화까지 전방위로 발휘하는 영향력 때문에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린다. 일부다처제 국가에서 부인을 한 명만 둔 이유도 “삶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네옴시티’ 건설은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사우디의 핵심 사업이다. 야심 찬 30대 개혁군주가 추진하는 지구 역사상 최대 도시 프로젝트다. 그는 네옴시티를 구상하면서 “나만의 피라미드를 갖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사막 위 도시의 하이라이트는 100% 친환경 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이다. 더 이상 원유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래 에너지 개발에 나서겠다는 젊은 지도자의 뜻은 확고해 보인다. 한 외신 인터뷰에서는 “유가가 30달러든 70달러든 신경쓰지 않는다”며 “그 싸움은 내가 나설 싸움이 아니다”라고 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도심항공교통(UAM) 같은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수조 원대 사업들이다. 그린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협력도 눈에 띈다. 한-사우디 ‘수소 동맹’이라는 표현이 벌써 등장했다. 1970, 80년대 ‘1차 중동 붐’이 한국 건설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일군 것이었다면, 이제는 기술과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된 ‘2차 중동 붐’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는 최고 60도의 더위 속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며 자국의 고속도로와 항만을 지어준 한국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건설 사업들이 줄줄이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사우디의 고위당국자들이 “한국인들이 다시 와서 마무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한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한국 기업들을 극찬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우디는 신도시 계획을 세우면서 판교 테크노밸리를 참고 사례로 검토했다.

▷사우디가 2019년 해외 가수들의 콘서트를 처음으로 허용한 이후 가장 먼저 초청한 그룹이 BTS다. 빈 살만 왕세자의 자녀들이 K팝에 갖고 있는 관심이 작용한 결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자국에 노동자들을 파견했던 자원 빈국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 저력을 높이 사고 있다고 한다. 경제 협력에 더해진 사회, 문화적 관심이 50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의 문을 더 활짝 열어줄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