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燈祭

bindol 2022. 11. 18. 07:44

[이규태 코너] 燈祭

조선일보
입력 2002.10.16 20:47
 
 
 
 


한·중수교 10주년을 기념하여 지금 김포공항 인근 광장에서 중국
등제가 열리고 있다. 등으로 만든 일주문을 들어서면 2000여개의
자기등으로 만들었다는 학이 맞이하고 50만개의 누에집 등으로
만들었다는 18m의 봉황이 머리를 돌려 보는가 하면 100m 길이의 용이
굽이치다가 등으로 만든 만리장성에 와닿는 장관이 펼쳐진다. 등불이
아니라 등을 소재로 한 매머드 야외 조각전이라는 편이 옳다.

우리나라에도 등문화는 대단했었다. 초파일 전야에는 집집마다 문전에
아들 수만큼 여러 가지 모양의 등을 내걸어 부처님의 은혜가 미치기를
빌었고, 종로의 대상(大商)들은 오강(五江)의 돛대를 빌려다
등책(燈柵)을 만들어 수백개의 등을 달아 재력을 과시했다. 이날 밤 한양
둘레 100리 안에 사는 사람들은 노부모를 등에 업고 남산에 올라 이
불구경하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어룡등·봉학등·일월등·누각등·거북등 등 등타령에 나오는 등만 해도
가지수가 50여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국의 등문화에 비하면 그 규모에
있어 차원이 다르다. 원소절(元宵節)이라 하여 정월대보름날 전야부터
사흘간 방야(放夜)라 하여 야금(夜禁)을 풀고 온 장안을 등으로 꾸몄는데
등절(燈節)이라고도 불렀다. 당나라 때에는 장안 안복문(安福門) 밖에
높이 120척, 넓이 20칸의 등륜(燈輪)을 만들어 황금·백은·오색 옥과
보석으로 만든 5만개의 각종 금수(禽獸) 모양의 등으로 꾸미고 임금은
수천 궁녀를 거느리고 그 아래에서 춤을 추게 하여 등절을 즐겼다. 등의
크기나 수로 태평성세를 상징했고 가문의 번창을 그로써 과시했기로
등사치는 멎을 줄을 몰랐다. 특히 세도가 충천했던 양귀비의 친정 오라비
양국충이나 언니 한국부인의 등사치는 유명했다. 아홉칸 등루(燈樓)를
짓고 그 다락에 80척의 백가지 등나무를 심어 장안을 밝혔기로 달빛이
무색했다는 시도 있다. 송나라 때는 등으로 산을 만들어 임금으로 하여금
그 등산(燈山)을 등정케 하기도 했다. 「부잣집 한 등은 큰 곳간의 조
한톨이요, 가난한 집 한 등은 켜놓고 부자 모녀가 맞대어 통곡한다」는
시에서 망국 등사치를 미루어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만한 등문화의
배경이 있기에 이만한 등축제가 가능했음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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