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북한과 丹靑
성불사(成佛寺) 하면 밤새도록 잠 못 이루게 한 풍경을 연상한다. 한데
근간에 북한 성불사를 다녀온 친구로부터 성불사에는 풍경이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북한 사찰들에서 풍경뿐만 아니라 기둥과 처마의 그
화려했던 단청도 볼 수 없다 한다. 산을 사랑했던 시인 노산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난다. 금강산은 너무 여성다워 요염하고 지리산은 너무
남성다워 멋이 없다. 이를 알맞게 절충한 것이 묘향산(妙香山)인데 여덟
가지 향나무의 훈향(薰香)이 어우러져 묘향이요, 묘향산 본사인 보현사의
단청 여덟 구름이 어우러져 묘운(妙雲)이라고 옛 시인이 읊었다 했다.
보현사 단청 속의 구름이 별나게 고왔던 것 같으며 그에 그려진 구름
무늬만도 1)머흘러있는 구름 2)흐르는 구름 3)솟구치는 구름
4)만(卍)자로 휘감는 구름 5)바람에 날리는 구름 6)하느작거리는 구름
7)가늘게 갈라진 실구름 8)오색 영롱한 색구름 도합 여덟구름이었으니,
여타는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 곱던 단청이 종교부정의 체제에서
반백년 지나느라 빛을 잃고 거무튀튀한 목질의 노출로 무주공간이 돼
버렸다. 신을 부정했던 동베를린 지역의 사원들의 돔이나 외벽이
새까맣게 변색돼 있음을 보고 관리하던 성직자에게 물었던 일이 있다.
신이 나가면 집이 검어진다던 대꾸가 잊혀지지 않는다. 부처님이 나가고
없으니 거무튀튀할 수밖에 없었음직하다.
단청의 목적은 건물을 풍화나 좀벌레로부터 보존하고 거친 목재의 겉이나
검게 변색된 것을 숨기는 실리적 목적도 없지 않으나, 그 뭣보다 건물에
권위와 위엄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초월자인 신불이 계시는 곳과
천명을 수행하는 임금이 사는 궁궐, 그리고 임금의 명을 집행하는
관공서만이 단청이 허락됐었다. 따라서 신불을 부정했던 북한에 단청이
있을 수 없었다. 그 북한에서 묘향산 보현사를 비롯, 59개 사찰의 단청
복원을 위해 남측에 단청 기술자와 각색 도료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금(改金)이라 하여 부처의 몸에 금칠을 하는 일도 맡을 것이라
하니 부처님을 옛 자리로 모시는 상징적 작업으로 단청작업 이상의
의미부여를 해야 할 것 같다. 일련의 북한 개방정책의 종교적 표출이기도
하여 북한 종교문화재에 빛과 색깔을 주는 민족 사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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