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對治주의

bindol 2022. 11. 18. 07:39

[이규태 코너] 對治주의

조선일보
입력 2002.10.21 20:15
 
 
 
 


병액(病厄)을 귀신의 소행으로 알았던 우리 조상들은 그에 대해
양면으로 대처했다. 하나는 그 귀신이 좋아하는 것을 바침으로써
해코지를 면하려는 소극적 대처로 가해자·피해자가 한통속이 되어
해소하려 한다 하여 이를 동치(同治)라 한다. 이를테면 암(雌)귀신으로
알려진 천연두가 나돌면 남성 성기를 유감(類感)하는 방망이를 죽으로
엮어 문전에 걸어둠으로써 이 암귀신을 성적으로 환대,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그런가 하면 몸에 종기가 나면 그 둘레에다 호랑이
호(虎)자를 둘러 써 그 병귀를 꼼짝 못하게 하여 낫게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알았으니 이는 가해자·피해자가 맞대결하여 적극적으로
해치우려 든다 하여 대치(對治)라 한다. 감기가 들었을 때 뜨거운
아랫목에 이불을 둘러씌워 땀을 빼는 이열치열은 동치요, 얼음
물수건으로 이마를 식히는 이랭치열(以冷治熱)은 대치랄 수 있다. 실연한
딸에게 '헤어지길 잘했다. 사내놈이 그놈 하나뿐이냐'며 슬픔을
전환시키려는 어머니는 대치요, '늙어서 생각나는 사람을 젊었을 때
일부러라도 만들어놓아야 한다'며 더불어 눈물 흘리며 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어머니는 동치다.

대체로 신과 악마, 선과 악, 문명과 야만, 자유와 노예처럼 대결구도로
살아온 서양사회에서는 갈등의 해소수단으로 대치가 주가 돼왔다. 악을
부정하고 부자유 폭력 테러를 제거함으로써 선을 회복하려는 대립과
공격의 사상이 유럽문명이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선은 아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의 대치 전쟁에서 패한 것이며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반정부군과의 대치(對治)에서 패함으로써 나라가 휘청한 것 등이
그것이다.

작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 자폭테러에 대한 대테러의 대치 전쟁이
진행돼왔다.테러 기지로 지목받아온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몰락시킨 데는 그 대치가 성공했다. 미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 유엔
안보리 국가들의 동조나 묵인을 설득하고 있는 이라크 공격도 대치의
표출이다. 카터 전 대통령에게 주는 노벨평화상의 저의로 이 미국의
대치주의에 대한 반동이 노출되었듯이 대치에 반발하는 여론도 거세다.
그 와중에 미국의 얼굴 없는 연속 저격살인, 발리 폭발테러, 프랑스
유조선 피폭, 필리핀과 러시아의 폭탄 테러 등이 대치에 대한 반동으로
가닥이 잡혀가고도 있다. 그 와중에 북한의 핵보유 시인으로 경수로를
지어주고 기름도 대주는 동치(同治)가 배신받았다. 대치주의인 부시이즘
탱크에 기름 붓기 정신없는 작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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