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예술 치료

bindol 2022. 11. 19. 15:45

[이규태 코너] 예술 치료

조선일보
입력 2002.09.09 20:27
 
 
 
 


한국전쟁 때 한국전선에도 위문공연을 했던 미국의 희극배우 밥 호프가
1개 연대에서 웃기고 나면 그 연대의 중화기중대의 전력만큼이
증진된다는 말이 있다. 곧 어떤 방식으로든지 감동을 주면 근심 걱정
불안 공포 같은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임꺽정은 인간의 이
메커니즘을 잘 활용했던 리더였다. 태종의 5대손인 이주경이라는 분이
황해도 지방으로 토조(土租) 받으러 갔다가 임꺽정의 도당에게 잡혀 이
괴수 앞에 끌려갔다. 이주경은 당시 피리의 명수로 팔도에 소문나 있던
터라 임꺽정이 알아보고 깍듯이 모셨다. 그리고서 그의 도당을 달밤에
한데 모아놓고 피리 한 곡조를 청했다. 허리 춤에 차고 다녔던 학다리
피리로 불어대는데 구슬픈 계면조(界面調)로 접어들자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더니 한 곡조가 끝나기 전에 서로들 붙들고 엉엉 울음마당이 돼
버렸다. 이렇게 실컷 울려준 대가로 안전하게 모셔 귀환시켰던 것이다.
임꺽정은 이 피리의 감동 카타르시스로 불안이나 공포 근심 걱정 그리고
향수를 말끔히 씻어내고 사기를 돋우었던 것이다.

지금 곁에 있던 사람이 나의 무릎을 찰싹 쳤다 하자. 그럼
이성(理性)을 관장하는 뇌와 감정을 관장하는 뇌 틈에 자리한
망상체(網狀體)에 그 자극이 전달된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교환대
구실을 하는 이 망상체는 이를 이성 뇌에 보내면 무릎에 파리가 앉은
것으로 보고 친 것으로 판단케 한다. 온종일 이같은 교환 업무에
시달리거나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교환대가 폭주 마비되듯이
망상체의 판단기능도 마비된다. 이 마비된 기능을 말끔히 복원시키는
수법으로 종교 감동법과 예술 감동법이 있다. 좌선으로 이몽사몽의
경지에 들었다 나오든가 성직자의 설교나 참회로 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하거나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관에, 소설 좋아하는 사람은 소설을,
그림 좋아하는 사람은 화랑에 가서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에 빠지면
피로해 기능을 마비한 망상체에서 에너지가 샘솟음친다.

갤러리를 두고 연중 무휴로 미술전을 열어 환자들의 감동치료를
병행하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이 있다. 비단 미술뿐 아니라 한달에 세
번의 음악회도 갖고 또 명화 감상도 하여 불안에 찌든 환자나 환자
가족의 망상체 세척을 하는 것이 되니 병원환경 개선의 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