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즉석밥
근 40년 전 히말라야 등반에서 졸지에 눈 섞인 강풍을 맞은 적이 있다.
당장에 몸이 식어내리고 바위에 엎드리지 않고는 날아갈 기세였다. 언덕
아래 텐트를 치고 긴급대피, 밤을 지내야만 했다. 배는 고파오는데 갖고
있는 것이라곤 알파미(米)뿐이었다. 봉지쌀에 물을 붓고 덥히기만 하면
밥이 되는 초기의 즉석밥이다. 물도 구할 수 없고 불도 없다. 텐트의
눈을 거둬다 체온으로 녹인 물을 부어 겨드랑이에 끼어 체온 가열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체온으로 밥을 짓는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설익은 반쌀반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왜장 가운데 한 사람이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할
수 있었던 작전 가운데 하나를 적고 있다. 밀정을 써 조선군 병력이
식사하는 장소를 미리 알아내어 기습병력을 매복시키는 작전인 것이다.
정착민족인 한국사람의 식사체계는 밥과 국이 필수이기에 한솥밥
한솥국을 나누어먹는 집단취사가 불가피하다. 이동민족처럼 따로따로
들고다니며 흩어져 먹을 수가 없기에 작전상 약점인 집합을 불가피하게
했고, 여우 같은 왜적이 그것을 노려 전세를 유리하게 몰아간 것이다.
정착성 식사문화의 대표적인 것이 밥이다. 전야(前夜)에 며느리는
삼경이 넘도록 뉘를 가린다. 뉘 가린 쌀을 키질하여 겨를 날리고 물에
씻어 뜨물을 낸다. 솥에 쌀을 안쳐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옛 어머니들
때는 나무가 참나무인지 밤나무인지 소나무인지로 밥맛을 알아맞혔으며,
불기가 센 무화(武火)냐 부드러운 문화(文火)냐로 지아비 밥상의 밥과
사랑방 밥상의 밥을 구분해 지을 줄 알았다. 지예밥이라 하여 절반만
삶았다가 불을 잠시 죽여 뜸을 들이는데 지은 밥의 찰기가 모자라면
소박맞고 찰기가 많으면 밤궁합 들러붙는 것으로 알았다.
이 철학이 스며있는 정착성 밥짓는 문화가 이동성 사회로의 급변하는
물결을 타고 있다. 이제 임진왜란이 일어나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전자레인지에 덥히기만 하면 되는 즉석밥 시장이 기하급수로
성장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연간 40%의 매출성장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제 해질 무렵 시골집에 들면 물씬하던 밥냄새는 향수의
장으로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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