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가 높은 가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 家世以節義聞·가세이절의문
진사 임희진은 호남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병사를 모아 왜적과 싸우다가 진주 싸움에서 죽었다. 절의가 높은 가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 조상 중에 선비 아무개가 있었는데, 문예를 잘해서 장가들기 전 어린 나이에 향시에 장원하고 회시(會試)를 보러 상경하다 장성을 지나게 되었다. 비를 만나 객점에 들지 못하고 가다가 어느 마을에 당도했다.
任進士希進, 湖南人也. 壬辰募兵, 赴倭亂, 死於晉州之戰, 家世以節義聞. 其先祖章甫某, 有文藝. 弱冠未娶, 魁鄕解, 將赴會圍, 路由長城, 値雨違店, 到一村.(임진사희진, 호남인야. 임진모병, 부왜란, 사어진주지전, 가세이절의문. 기선조장보모, 유문예. 약관미취, 괴향해, 장부회위, 노유장성, 치우위점, 도일촌.)
위 문장은 조선 후기 대사헌·예문관제학 등을 지낸 이원명(李源明·1807~1887)의 야담집인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실려 있다. 위 문장은 전체 글의 앞부분이다.
평생 수절한 한 여인이 임종을 앞두고 손·증손과 그 며느리들에게 수절의 고통을 상기시키며 억지로 수절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면, 어느 마을에 도착한 위의 선비는 한 소녀를 보고 반해 그 어미에게 접근하였지만, 박대를 당했다. 한양에 가 시험을 보고 내려오면서 다시 그 집에 들러 어렵사리 혼인을 요청해 그 소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복자 하나를 남기고 남편이 죽어버렸다. 그때 여인은 열여덟 살이었다. 어느 날 조카뻘 되는 남자가 사랑방에 머물게 됐는데 마음이 움직여 등을 들고 그 방에 들락거렸다. 계집종들이 킬킬댔다. 지쳐 방에 돌아와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 남자와 마음이 맞아 손을 맞잡고 휘장 속에 들어갔는데, 돌아가신 어른이 책상다리를 하고 얼굴에 피를 흘리며 앉아있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들고 잘못을 뉘우쳤다. 그 뒤로 양가의 절개 있는 부인이 됐다. 죽을 때 손·증손, 며느리들을 앉혀놓고 “수절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화개 읍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러 가는데, 마을 할머니들이 길가 평상에 앉아 여성의 수절을 놓고 말들이 엇갈리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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