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잡가(雜歌)의 「비석(碑石)타령」에 「아문앞에 서있는건 개꼬리 목비(木碑)요 동구밖에 서있는건 수렁밭 목비―」라는 대목이 나온다. 개가 주인을 보면 꼬리부터 흔들듯 원님이 부임하면 아부하고자 세우는 선정비(善政碑)가 개꼬리 목비요, 감사나 어사가 오면 수렁 속에 나무토막을 넣어두어 오래된 것처럼 위장하여 급조하는 즉석 송덕비(頌德碑)를 수렁밭 목비라고 한다. 또 감사나 유수 같은 보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재임 동안 송덕을 기려 초상화를 모신 생사당(生祠堂)까지 지어 민원(民怨)을 샀다. 다산(茶山)은 벼슬아치들이 교활한 향리를 시켜 송덕비나 생사당을 세우게 하거나 이방으로 하여금 돈을 거둬 선정비를 세우게 한다 하고 선조 때 30년 안에 세워진 이 생전(生前) 선정비를 모두 두들겨 부수었는데, 그 금령이 해이해져 비채(碑債) 또는 입비전(立碑錢)이란 명목으로 가렴주구가 혹심하다 했다. 벼슬아치가 떠난 후 그가 강요해 세운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의 비문을 「애민선정비(愛緡善丁碑)」로 고쳐 놓은 일이 있었다. 돈꿰미(緡)를 사랑하여 돈 긁어모으는 고무래(丁)질을 잘한다는 뜻이다. 선정은 후세에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지 생전 송덕은 사실여부를 떠나 역효과를 낸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인지 당대의 업적은 당대에 써 남길 수 없는 것이 법도가 돼 왔다. 세종 13년에 임금은 「태종실록(太宗實錄)」이 완성된 것 같은데 한번 보고 싶구나」 했다. 파란 많았던 아바마마의 일대기인지라 보고 싶었음 직하다. 이에 담당 우의정인 맹사성(孟思誠)은 「실록에 기재된 것은 당대의 사실이며 당대에 실록을 쓰지 않은 이유도 왜곡시킬 수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전하가 보시더라도 아바마마를 위하여 고치지도 못할 것이요, 이렇게 한번 보기 시작하면 후대의 사관들이 의구심이 들어 그 직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니 보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현 정권의 업적을 찬양한 글을 각급 교과서에 기재한다는 것은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옛날에 선정비나 생사당 세운 것과 다를 것 없고 실록을 당대에 기술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후에 기재하면 좋을 업적일지라도 그 때문에 역사에서 불신케 되고 욕되게 하는 편향 교과서가 아닐 수 없다. 그 책임자를 야당이 아니라 여당에서 앞장서 응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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