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8] 응답하라 에트루리아!

bindol 2022. 12. 9. 18:59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8] 응답하라 에트루리아!

입력 2022.12.06 03:00
 

미국 SF 작가 필립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라는 작품에서는 미국보다 핵무기를 먼저 개발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대체 역사를 그려본다. 독일과 일본은 미국 영토를 반으로 나눠 갖고, 조선은 결국 독립하지 못한다. 더 끔찍한 상상도 가능하겠다. 만약 일제강점기가 수백 년 계속 유지되고, 수백만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했다면? 아마 한국인의 역사와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일이 2000년 전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로마가 세상을 정복하기 전 이탈리아 반도 최고의 문명은 에트루리아였다. 토스카나 지역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명을 창시했던 그들은 로마를 속국으로 삼았고, 대부분 초기 로마 왕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이었다. 하지만 추후 지중해 최대 제국을 세운 로마인들은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기 시작한다. 에트루리아 지역으로 로마인들이 이주하고 에트루리아 글과 기록들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명은 대부분 로마인들이 남긴 책과 기록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에트루리아 언어를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인물들의 이름과 몇몇 짧은 단어들 빼고 에트루리아인들의 언어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런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토스카나 지역 고대 온천에서 잘 보존된 수십 개의 조각과 흉상들이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많은 유물에는 라틴어와 에트루리아어 두 언어로 글들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치 1799년 발견된 ‘로제타석’에 적혀 있는 그리스어와 고대 이집트어를 통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가 판독되었듯, 언젠가 다시 고대 에트루리아어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역사학자들은 들떠있다.

유럽과 미국인들의 정치, 외교 그리고 세계관에 여전히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원한’ 로마제국. 로마인들 이전 에트루리아 역사를 드디어 에트루리아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미래가 흥분되고 기대되는 이유다. 응답하라 에트루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