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變身 한국축구

bindol 2022. 11. 22. 05:58

[이규태 코너] 變身 한국축구

조선일보
입력 2002.06.30 19:34
 
 
 
 

등산 도중 쉼터에 이르렀을 때 한국 사람은 이르기가 바쁘게
주저앉아버리는데 미국 사람은 서서 쉰다. 야수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가상할 때 미국 사람은 대결할 수 있는 공격자세요 한국사람은 손쓸 수
없이 당해야 하는 방어 자세다. 미국은 공격 테니스인데 한국은 방어
테니스다. 낯선 사람끼리 경쟁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동성 사회에서는
공격적으로 살게 되고 낯익은 사람끼리 화목하게 살아야 하는 정착성
사회에서는 남을 배려하고 양보해가면서 살게 된다. 공자의 가르침이
인(仁)으로 귀결된다듯이 「人+二」 두 사람 간의 사이(間)를 잡는
가르침이 유교요, 사이를 좋게 유지하려는 심성이 민족의 원형질로
정착했고 경쟁을 본령으로 하는 스포츠에서까지 남을 배려하는 이 심성이
무의식 중에 작동, 경쟁력을 약화시켜왔다.

축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급적 안전하게 공을 돌리고 패스 미스를
두려워하며 자신 때문에 팀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플레이를 하게
마련이다. 이것을 갈파한 것이 히딩크 감독이다. 안전 위주의 정착성
사회의 가치관은 튀지 말고 남 나름으로 하여 실수를 해서는 안 되기에,
실패를 두려워 않는 마이너스정신이 결여된 것을 한국축구의 정체
요인으로 본 것이다. 이동성 가치관의 소유자인 감독과 정착성 가치관의
소유자인 선수와의 접목에서 한국 축구는 변신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히딩크는 그 실천을 위해 실패를 두려워 말라는 것을 강조했다.이을용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 온 국민이 실색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오로지 히딩크만이 다독거려주며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모든 선수들에게
마이너스 정신을 돋우어주었다.

또한 벤처 정신을 위해 기초체력과 역활범위를 정해주고는 그 안에서의
재량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주었다. 곧 시켜서 하는 타율 축구가 아닌
생각해서 재량을 부리는 자율축구로 전환시켜주었다. 월드컵이 생긴 이래
4강에 진출했던 동구권 국가는 체코·유고·폴란드·헝가리·불가리아·
소련 등 많기도 하지만 이번 서울 월드컵에서 맥을 못추고 만 것은 아직도
못 벗어난 구체제의 타율 축구 한계를 들어낸 것이 된다. 이상의 한국축구
변신은 바로 우리 한국의 사업체나 단체에 고스란히 요구되는 변신이라는
차원에서 접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