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蟹戒
우리 옛 선비들이 후학이나 자제들에게 내린 교훈 가운데 해계(蟹戒)라는
게 있었다. 게의 생태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은 것이다. 지금 꽃게철에
서해안 남북 경계선 남쪽에서 꽃게어장 보호를 빌미로 한 무장충돌이 또
일어나 북측의 속셈이 뭣인가 의아해하고 있다. 이 의아심이 옛 선비들이
내렸던 해계와 고스란히 들어맞는 것 같아 되뇌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게의 별명이 무장공자(無腸公子)다. 겉인 게딱지는 단단하여 외모는
공자(公子) 같으나 속은 창자가 없어 실속이 없다 해서 얻은 별명이다.
곧 표리부동(表裏不同)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그 첫째다. 남북해빙을
내세우고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으로 유람선이 오가는데, 서해안에서는
포화를 쏘아 배를 침몰시키고 대량 살상을 감행했음은 표리부동의
무장공자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겉은 햇볕정책이라는 미명 속에 속은 텅
비었음을 국민 앞에 노출시킨 것도 되며, 텅 빈 정도가 아니라 포탄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되기까지 한다.
게에게는 별명도 많은데, 사특하게 곁눈질한다 하여 의망공(倚望公)이요,
바르게 가지 못하고 옆걸음친다 하여 횡보거사(橫步居士)라기도 한다.
여태까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행동이 의망·횡보로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북·미 회담을 바로 앞두고 저지른 서해의 무력충돌에서 뭣을
의망하는지, 그리고 갑자기 왜 횡보를 했는지 그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독 속에 게들을 넣어두면 서로 먼저 기어오르려고 앞에 오르는 놈을 잡아
끌어내린다 하여 「독 속의 게」란 속담이 생겼다. 서해의 도전은
성공적인 서울 월드컵으로 한국 이미지가 급상승하는 막바지에서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도발 시기로 보아 닳아오른 한반도의 상승 열기에
불안 조성을 기도했다는 것은 독속의 게꼴이 아님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게는 어떤 몸집 큰 짐승에게도 발집게를 쳐들어 대드는 임전무퇴의
강골이다. 인도에서는 대드는 게를 보고 호랑이가 도망치고, 불경에는
코끼리와 싸워 이기는 대목이 있다. 우리 해군이 상대적으로 첨단 장비를
갖추고 수적으로 우세한 함정으로 대결했음에도 방어적 응전으로 배가
격침당하고 희생자를 양산한 것에 전력이나 작전 외적인 변수라도
작용하지 않았느나는 국민의 의구심을 당국이 풀어주어야 하는
해계(蟹戒)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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