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페이스 페인팅
월드컵 기간 중 얼굴에 태극무늬 축구공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무늬의
페이스 페인팅이 유행하고, 그 페인팅을 간소화한 스티커가
대량유통됐다. 이 페이스 페인팅이 무늬만 바뀐 새 유행이 되어 식물
물감으로 그리는 한시적 문신(文身)인 헤나와 보석을 살갗에 붙이는
판박이와 더불어 올여름 뉴패션으로 뜨고 있다 한다. 얼굴에 그리고
붙이는 화장은 동서가 다르지 않게 역사도 유구하다. 우리 연지곤지가
그것인데 그 뿌리는 화전(花鈿)에 있다. 낙매장(落梅粧)으로도 불리는 이
화전에 대해 중국문헌 「사물기원(事物紀原)」은 이렇게 적고 있다.
송나라 무제(武帝)의 수양공주가 신년점(新年占)을 치는 정월 7일에
함장전(含章殿) 다락에 기대어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매화꽃 한 잎이
날아와 공주의 이마에 들러붙는지라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꽃잎이 붙은 얼굴이 어찌나 예뻐보이던지 궁녀들이 이를 흉내내어 이마에
붙이고 다녔던 것이 연지의 뿌리라 했다.
볼 페인팅인 곤지는 기원이 다르다.「유양잡저(酉陽雜 )」에 보면
삼국시대 오나라 남양왕이 자칫 잘못으로 부인의 볼에 상처를 냈다. 이에
수달피의 기름으로 만든 고약을 만들어 발랐더니 상처가 붉은색으로
변색했다. 그것으로 부인의 미색이 돋보이자 임금의 사랑을 얻으려는
궁녀들이 볼에 칠하기 시작한 것이 곤지가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원설은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요, 연지곤지의 인류학적 뿌리는 선사시대
신명을 대행하는 샤먼, 곧 무당 표시였다. 유럽에서도 16세기 이래로
얼굴에 해와 달·화초·마차 등 검은 패치를 얼굴에 오려 붙이거나
그리고 다녔다. 원래는 치통을 낫게 하는 고약을 발랐던 것이 흰 얼굴을
돋보이게 하거나 이성의 눈을 끄는 수단으로 크게 유행했다. 어떤 모양의
패치를 어느 부위에 붙이느냐로 메시지가 나타내기도 했고 휘그당
지지자는 오른쪽 볼에, 토리당 지지자는 왼쪽 볼에 붙이는 등으로 정당을
나타내기도 했다. 귀부인들은 시녀에게 다양한 패치박스를 들려
외출하기까지 했다.
방에서 문을 잠그고 고립해 텔레비전과 인터넷만으로 외계와 접하던
신세대가 이번 월드컵으로 촉발되어 고독한 방에서 뛰쳐나와 살과 살이
닿는 공감대를 이뤘고, 그 신나는 공감대에의 동참이요 증명으로 페이스
페인팅이 번져나간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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