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시장 정찰제

bindol 2022. 11. 26. 08:55

[이규태 코너] 시장 정찰제

조선일보
입력 2002.04.05 18:46
 
 
 
 


남대문·동대문 시장 등 서울의 주요 재래시장에도 오는 5월부터
백화점처럼 가격 정찰제를 시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제 유구한
한국적 상술이던 에누리며 덤이 발붙일 여지를 뭉개버리는 것이 되니,
공정거래라는 경제적 소득은 얻을지 몰라도 그에 잠재된 인심이라는
심정적 가치는 유린당한 것이 된다.

같은 시장이라도 인종·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바자와 생김새며 말이며 차림새가
같고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끼리 팔고 사는 5일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바자에서는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며, 팔고 사는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 달라지는 눈빛까지 놓쳐서는 안 되며, 일단 거래가
끝나면 남남이 되는 피로한 타산 일변도의 적대관계 거래다. 하지만
5일장에서는 지금 손해보아도 다음 장에 이익으로 이어지고 에누리를
해주거나 덤을 주면 다음 장에서 또 찾아올 것이며,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고 타산되는 것이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이 그로써 형성되어
세상 살맛이 나는 친화관계 거래다.

새우젓장수는 예외없이 알통 덤통 두 개의 통을 엮어메고 다닌다. 젓을
사 받아들고는 덤통 쪽을 보고 의미있는 웃음을 웃으면 알아 차리고는
덤통에서 덤으로 국물 한 그릇 퍼준다. 무슨 목적이 내재된 계략적인
웃음을 덤통 웃음이라 한 것은 이 한국의 덤문화에서 생겨난 말이다.
소금장수의 소등에 걸친 소금바리의 오른쪽은 질이 조금 낮은 덤바리요,
시장 생선가게에서 상어 한 마리 사면 새끼 한 마리를 어미 뱃속에
끼워주는데 이것이 덤새끼다.

덤을 주는 만큼 얻는 것이 있었다. 필수품인 새우젓장수나 소금장수가
산촌에 들르면 여읠 처녀를 둔 마님 중신아비 들르는 것보다,젊은 서방님
장모 들르는 것보다 반갑다는 말까지 있다. 부잣집 사랑방에 융숭히
모시고 젊은 무당 곱게 단장시켜 슬며시 넣어주기까지 했으니 덤값
에누리값 빼고도 남는 장사랄수 있다. 덤은 이처럼 한국인의
상도(商道)로 정착해 내렸으며, 서양에는 없는 구매욕구 자극문화였다.
국제화의 진행으로 정찰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나 역사도
유구한 심정문화재(心情文化財)의 훼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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