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서울 소림사

bindol 2022. 11. 26. 08:54

[이규태 코너] 서울 소림사

 

조선일보
입력 2002.04.07 19:41
 
 
 
 


중국에서는 오악(五岳)이라 하여 다섯 개 명산을 숭상해왔는데 그 중
한복판에 있는 중악(中岳)이 숭산(嵩山)이다. 태실산(太室山)
소실산(少室山)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하의
치수를 성공시킨 전설속의 임금 우왕(禹王)이 두 부인을 거느렸는데,
젊은 쪽이 소실산이요 첩을 소실이라 부르게끔 원인 제공을 한 바로 그
산이다. 495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가 인도에서 온 고승을 위해 절을
소실산 두메에 짓고 소림사(少林寺)라 했던 것이다. 신라 유학승들이
반드시 들러 좌선 한번 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곳이 바로 소림사
초조암(初祖菴)이다. 바로 선종(禪宗)의 우두머리인 달마대사가 면벽 9년
도를 닦았던 암자이기 때문이다. 선종은 후에 남종(南宗)과
북종(北宗)으로 갈라졌는데 숭산에 남아 그 법통을 계승한 북종의
보적(普寂) 지공(志空)의 뒤를 이은 신행(神行)선사는 바로 신라
유학승이었다. 「전당문권(全唐文卷)」에 수록된 그의 비명을 보면
속성이 김씨로 경주 태생이며 스승이 입적하자 본국에 돌아가 중생을
크게 인도했다 한다.

중국 초등학교 상급학년에게 중국이라 할 때 연상되는 사항 10개를
써내라 해서 모아 보았더니, 그 가운데 하나로 소림사가 들어있을 만큼
중국에선 인지도가 높은 절이다. 선종의 뿌리라서가 아니라 권법(拳法)의
산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림사 권법은 외공(外攻)을 주로 하는
외가법(外家法)과 급소를 공략하는 내가법(內家法)이 있는데 내외권법을
갖추면 창검과 투구 갑옷으로 무장한 왜구 1당 70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권법으로 무장하게 된 연유는 산적이나 역적이 자주 침입했던
데 대한 자위 수단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수나라 때만도 열 번이나
산적의 소굴이 됐고 역적 왕세충이 점거하려 들었을 때 권법승 수백명이
물리쳤다. 1928년 군벌인 석우삼(石友三)이 소림사를 불태웠는데
중·일전쟁 중에 일본군에 붙었다가 국민군에 잡혀 총살당함으로써
소림사 불력의 당연한 소치로 구전되고 있다.

이 숭산 소림사를 일산 호수공원 변에 1만평 규모로 원형대로 지어
선무(禪武)합일의 도장을 만들기로 소림사 방장과 합의를 보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외 소림사는 이로써 독일과 태국에 이어 세 번째라
하는데 관광위주로 기울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