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일본속의 元曉
불교 교리와 철학에 그 많은 저술을 남긴 이론가 원효대사는 만년에
아무런 거리낌없다는 무애인(無碍人)을 자처, 무애박(無碍匏)을 치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무애무(無碍舞)를 추고 다니며 무지몽매한
민중에 불심을 적시고 다녔다. 곧 의상대사가 산간불교·귀족불교로
정법을 지켰다면 원효대사는 시정(市井)불교·민중불교로 편법 전도를
꾀한 것이다. 이 원효대사의 노래하며 춤추는 염불불교가 일본에 건너가
용약염불(踊躍念佛)의 씨앗을 뿌렸다. 7세기 나라(奈良)시대의 고승
행기(行基), 10세기 헤이안(平安)시대의 고승 공야(空也), 13세기
가마쿠라(鎌倉)시대의 고승 일편(一遍)의 노래하며 춤추는 염불에 의한
제도(濟度)의 뿌리를 이 원효의 염불불교에 두고 있다. 그만큼 원효는
일본에서 의미있는 존재였다.
일본 불교 정토종(淨土宗)의 개조(開祖)인 13세기의 법연(法然)스님은
종명(宗名)이나 종지(宗旨)를 정할 때 당나라 정토불교의 대가인 고승
가재(迦才)나 규기(窺基)의 논저를 젖혀두고 원효대사가 지은
「유심안락도(游心安樂道)」에 의지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일본에서 존경받았던 원효다. 이 「유심안락도」는 대사의 제자가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에 담긴 사상은 원효대사의 것임에는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일본 불교에서 대명신(大明神)으로
신격화됐음이 일본 국보「화엄연기(華嚴緣起)」나 옛 절에 전승해내린
탱화 등에서 입증되고 있다고 불교학의 김지견(金知見) 박사가 고증했다.
일본 문자인 가타카나의 뿌리가 신라시대 한문의 훈독에서 비록됐음을
입증하는 원효의 「판비량론(判比量論)」 필사본에서도 일본에서의
대사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이 필사본에는 8세기 초 필사 당시의
일본 실력자인 광명황후(光明皇后)의 사인(私印)이 찍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왕실의 소장품이었을 정도로 귀중품이었으며, 그 후 그 많은
병난으로 이 필사본을 보관했던 큰 절들이 불타 없어졌는데도 보존돼
내렸음은 가장 먼저 위난을 당했을 때 들고 나가는 사보(寺寶)가
돼내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일본 문자의 뿌리가 신라에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효대사의 일본에서의 위상을 말해주는 「판비량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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