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동전 재판

bindol 2022. 11. 28. 16:08
조선일보 | 오피니언
 
 
입력 2002.02.23 17:19:05

지금 미국에서 흥미있는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혼으로 자녀들을 할아버지에게 맡겨 기르고 있는 아버지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에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었던 판사는 동전 던지기로 결정, 아이들을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했다. 이에 동전 던지기에 패한 할아버지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동전 던지기로 가정의 중대사를 판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여 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그 판결이 주목되고 있다. 신약성서 ‘마가가 전한 복음서’ 15장에 보면 로마 병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서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지고자 제비를 뽑았다 했다. 여기에서 제비를 뽑았다 함은 우연에 거는 도박이 아니라 신의(神意)에 묻는 첨(籤)이다. 그래서 신전 등 신선한 곳에서 주사위를 던진다든지 동전을 던져 판결하는 신의재판(神意裁判)은 고대사회에서 상식이었다. 그리스의 신탁소에서는 희생양의 다리뼈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 재판을 했다. 이 신의 재판은 17세기 중엽까지 실행됐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헤름공(公)의 시대에 한 미소녀가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그녀를 두고 사랑싸움을 해온 랄프와 알프리드 두 병사에게 혐의가 쏠렸지만 서로 상대방에게 미루기만 했다. 이에 주사위 두 개를 던져 그 보탬수가 큰 쪽이 무죄가 되기로 했다. 랄프가 먼저 던져 둘 다 6점이 나와 12점의 최고수로 무죄가 확정된 듯했다. 이어 알프레드가 신의 가호를 빌고 주사위를 던졌다. 그 중 한 주사위가 둘로 쪼개지더니 보탬수가 13이 돼 판결이 역전된 것이다. 용의자를 물 속에 빠트려 가라앉고 뜨고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수심(水審), 신에게 맹서하고 끓는 물 속에서 자갈을 주워내게 하여 손을 데이고 안 데이고로 판단하는 화심(火審), 적량의 독을 탄 물을 먹여 그 반응으로 판단하는 독심(毒審), 체중을 두 번 저울에 달아 두 번째가 가벼우면 무죄로 삼는 평심(枰審), 등신대의 야수와 싸우게 하여 승패로 판단하는 수심(獸審) 등 신의 재판은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곧 법이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판단기준으로서의 법을 포기하는 것이 신의 재판이다. 이번 동전재판이 옳으냐 그르냐도 동전을 던져 판결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