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정동 교회

bindol 2022. 11. 28. 16:09

[이규태 코너] 정동 교회

조선일보
입력 2002.02.22 18:49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은 1879년에 준공된 부산의 일본관리청
건물이다. 조선시대의 일본 영사관이랄 왜관(倭館)의 우두머리
관수(館守)집을 헐어 지은 것으로 양식과 일본식의 절충건물이었다. 머리
없는 산발귀신이 출몰한다 하여 접근하지 않았던, 터가 센 집이었다.
아마도 왜관에 잠입, 왜인과 은밀히 통간(通姦)하는 여인이 잡히면 목을
베어 이 관수 집 문전에 효수(梟首)하는 것이 관례였던 데서 생긴 말일
것이다.

1880년대에 지은 양옥으로 인사동에 있던 철종의 부마 박영효(朴泳孝)의
집터에 지었던 일본공사관을 들 수 있는데,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성난
군중이 몰려가 불태워 버렸다. 80년대 양옥으로 1980년까지 장수한 것이
인천에 있었던 대불(大佛)호텔이다. 개화기에 인천을 통해 들른
외국인사는 한 사람 예외 없이 유숙했던 한국 근대화의 요람이었다.
헐리기까지 중화루(中華樓)라는 중국음식점으로 북경에서 온
주사부(周師父)라는 주방장의 북경요리가 유명했었다. 보존되었다면 한국
개화의 1등사적이 돼있을 것이다.

1890년대의 양식건물로는 영국대사관, 서울 중림동의 약현성당, 독립문,
서울 명동성당, 정동교회가 남아있을 뿐이다. 19세기의 양식건축은 도합
26개였는데 겨우 100년도 지탱 못하고 다섯손가락으로 헤아릴 만큼만
남아있을 뿐이요, 그것도 교회 건물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중 22번째 양식건물로 화재 등으로 노훼한 정동교회가 보수되어 3월
1일 첫 예배를 올린다. 벽돌 하나 교체하는 데도 크기·색깔 등을
정밀검사하여 원형 보존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고건물 보존에
수범(垂範)하였다 한다. 중세건물이 과반을 차지한다는 독일의
고도(古都) 뤼베크에 있는 15세기 선원클럽의 선장석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탁자와 의자, 그리고 실내장식 그 모두가 예대로였다. 2차대전
말의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된 드레스덴 성마리아 성당의 복원현장에서
조각난 파편을 모조리 주워모아 퍼즐 맞추듯 재구성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조각까지 주워맞추어 원형보존하는 문화재 정신을 「드레스덴
정신」으로 호칭하고 있었다. 묵은 것이면 가차없이 부숴없애버리는
우리를 너무 초라해 보이게 하는 드레스덴 정신이다. 그래서 정동교회의
원형 복원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