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주체성 찾은 화투

bindol 2022. 11. 28. 16:06

[이규태 코너] 주체성 찾은 화투

조선일보
입력 2002.02.24 18:43
 
 
 
 


왜색이 짙은 종래의 화투 그림을 우리 전통 민화나 사군자의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캐릭터로 바꾼 주체화 화투가 유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 훈장의 일종인 어깨띠에서 발상된 청단 홍단을 창과 깃발로
바꾸고, 일본 국화인 벚꽃을 동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개화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이 화투의 뿌리를 소급해 오르면 16세기에 일본과
교류가 있었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서양 카드를 일본에 들여온 것이
「가루다」이고, 이를 일본화한 것이 화투다. 카드의 포르투갈 말인
카르타에서 가루다란 말이 생겼음으로 미루어 화투의 뿌리는 서양 카드인
트럼프임을 알 수 있다. 일본학자들은 화투를 두고 일본의 외래문화
수용의 표본으로 무척 자랑해온 터였다.

유럽에 카드가 들어온 것은 1300년경으로 이탈리아 중부도시
쉐나에서였다. 중국에 갔던 수도사들에 의해서 들어와 중세 수도원들에
무척 유행, 병폐가 심했던지 「악마가 발명한 인간 타락 도구」라고
매도한 글이 남아있다. 중국의 카드가 56매로 3조(組)로 돼있던 것을
기사(騎士)의 상징인 하트, 귀족의 상징인 스페이드, 상인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농민의 상징인 클로버 4조(組)로 늘린 것이 다를 뿐이었다.

중국의 황제가 후궁들을 불러놓고 놀았던 이 카드의 뿌리에 대해 추적한
세 명의 학자가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P 아널드는 그의 저서
「도박백과」에서 최초로 카드놀이를 시작한 것은 한국이며, 화살 그림을
그린 갸름한 카드, 곧 투전(鬪箋)이 시조라고 그 구조적 특징을 들어
고증했다.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의 유희를 조사한 브루클린 박물관장 S
크린의 보고서에도 한국의 전통 투전을 서양 카드의 뿌리로 추정했으며,
B 아네스도 이 세상 최초의 카드는 한국의 투전이 아니면 중국의 화폐,
인도의 장기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 세 학자들의
고증이나 추정이 맞다면, 한국의 투전이 700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며
놀이를 퍼뜨리고 원점회귀를 한 것이 되며, 화투의 그림을
주체화시킨다는 것은 돌면서 때묻은 문화의 때를 벗기는 문화작업이랄 수
있다. 투전놀이 방법에도 「동동」 「찐붕어」 「소몰이」 「엿광메」 등
많은데, 이를 찾아 현대인의 생리에 맞게 개조하여 종주국의 위상을
다졌으면 한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정동 교회  (0) 2022.11.28
[이규태 코너] 동전 재판  (0) 2022.11.28
[이규태 코너] 미국 애국주의  (0) 2022.11.28
[이규태 코너] 슬로 푸드  (0) 2022.11.28
[이규태 코너] 삼족오(三足烏)  (0)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