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돼지꿈

bindol 2022. 11. 28. 16:11

[이규태 코너] 돼지꿈

조선일보
입력 2002.02.20 19:57
 
 
 
 


작년 1년 동안 1억원 이상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 네 사람에 한 사람꼴로
돼지 꿈을 꾼 것으로 한 은행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물론 돼지 꿈을
꾸어서 복권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돼지 꿈을 꾸면 재수가 생긴다는
머릿속의 통념이 꿈 속에 돼지를 몰아넣었을 뿐일 게다. 돼지에게
신통력이 있어 길(吉)한 땅이나 길한 사람을 점지해준다는 문헌 기록은
비일비재하다.

고구려 유리왕은 제사에 쓰고자 기르는 돼지 교시(郊豕)가 도망쳐 뒤쫓아
갔다가 위나암(慰那巖)이라는 도읍터를 점지받고 천도했다. 고려 태조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용왕을 구한 대가로 얻은 돼지를 따라가 도사리고
앉은 곳에 궁궐터를 정했는데 바로 그곳이 개성 만월대(滿月臺)다.
희랍신화에서도 트로이 사람들이 한 암퇘지가 점지해준 땅에 도읍을 정한
것으로 미루어 돼지의 신통력을 믿는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산상왕 때도 교시가 도망쳐 뒤쫓다가 여인을 만나 세자를 얻어
왕위를 계승시키기도 했다. 돼지는 도성만 점지해주는 것이 아니라
임금도 점지해주는 신통력 있는 짐승이었다. 이를 합리화하고자 돼지
발톱 아래에 북두칠성과 같은 점이 나있음을 들기도 하고 제사 때
돼지머리가 필수인 것도 신통력의 매체이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그렇다고 해서 돼지 꿈을 횡재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무리다.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담당의사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암퇘지 한
마리가 의사선생님에게 국부를 들이대는 꿈이었다. 이 환자는 퇴원이
결정됐는데도 어려운 집에서 돈 마련이 안되어 미루고 있는 참인 것을
감안, 병원에 바쳐야 할 돈을 걱정한 것이 돼지(돈)가 의사(병원)에게
접근하는 꿈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대사가 있을 때마다
돼지는 처분하기에 간편한 동산이요 화폐였다. 곧 대사에 맞추어 돼지를
기르는 것이 관례였기에 돼지와 돈의 등식이 한국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낙인박혀 내렸다.꿈은 무의식 조각들의 무질서한 교합이다. 돼지 꿈에
당첨자가 많은 것은 복권을 둔 강도높은 염원이 돼지로 하여금
무의식층에 낙인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돼지는 탐욕이나
탐식·무지·아집의 상징으로 돼지 꿈을 꾸었다해서 돈이 생긴다는
해석을 하는 문화권이 희소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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