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八字訣

bindol 2022. 11. 28. 16:12

[이규태 코너] 八字訣

조선일보
입력 2002.02.19 19:48
 
 
 
 

설날 세배를 하면 세뱃돈이나 주고 덕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학식이 있는 집안 어른이나 서당 훈장에게 세배를 하고 나면 봉투
하나씩을 건네주는데 촌지 봉투가 아니다. 집에 갖고 돌아와 무릎 꿇고
정중히 봉투를 뜯어보면 붓글씨가 크게 쓰인 종이가 나온다. 글 내용은
그 아이에게 교훈이 되는 글이게 마련이다. 이를 테면 기가 사나워
매사에 덤비는 아이라면 「소걸음으로 가라(牛步行)」는
삼자결(三字訣)이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공부나 일을 못 마치는
아이에게는 「마음 위에 칼을 얹어라(心上置刀)」라는
사자결(四字訣)이다. 참을 인(忍)자를 풀어보면 마음 심(心) 위에
칼(刀)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개화기 중학교들에 악자결(惡字訣) 또는 악자수신(惡字修身)으로 불리는
이색 커리큘럼이 있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무기명으로 자신이 부족하거나
지탄받을 사항을 두 자 또는 넉 자로 써내라고 시킨다. 그럼
「나태(懶怠)」 「잡기(雜技)」 「투기(妬忌)」 「과욕(過欲)」 등
학생이 써낸 악자결을 주제삼아 수업을 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창당 기념일이나 구력 정초인 춘절(春節) 같은 명절에
정치 현안이나 중점 정략을 몇자로 간략히 집약시켜 발표하는 관행이
있다. 그 구호가 넉자일 때 사자결(四字訣)이요, 여덟자일 때
팔자결(八字訣)이다. 중국을 개방시키고 발전시킨 덩샤오핑(鄧小平)의
개방을 가속시키는 사자결로 기억나는 것이 「간덩이를 키워라」
「경계할 것은 좌(左)다」는 것 등이 있다. 장쩌민(江澤民)도 작년 당
창설 80주년 연설에서 「때와 더불어 나아간다(與時俱進)」는 사자결을
발표했었다.

곧 때의 흐름에 따라 당도 바뀌어야 한다는 뜻으로 시장경제의
진척으로 사회주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치적 돌파구로써
이 사자결이 발상됐을 것이다. 그 장쩌민의 올 춘절 팔자결은
안정(安定) 안전(安全) 영활(靈活) 다원(多元)이다. 안정은 순조로운
정권교체를 강조한 것이 되고 안전은 정치·경제·군사상 안전보장을
강조한 것이며 영활은 기민하고 신축성있게 기회를 잘 포착함을
강조함이며 다원은 수출이나 외환구조의 고식화를 탈피, 임기응변을
강조한 것이다. 곧 기존 정치체제의 하드웨어는 유지하되 소프트웨어를
다양화하겠다는 팔자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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